여름 바다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해수욕, 서핑이라는 단어와 함께 시원함, 탁 트임, 아름다움 등의 감정이 떠오를 것입니다. 휴양지의 바다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바다가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치던 스산한 어느 날 해안 절벽에서 태평양 바다를 내려다보았을 때였습니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집채만한 파도와 산산이 부서지는 물거품들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바닷바람이 온몸을 마비시키는 듯했고, 몰려왔다 밀려가는 물줄기가 나를 삼키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 속에 빠지면 그 누구도 살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만큼 심각하게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바다가 무섭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스킨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였습니다. 자신감이 조금 붙자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공포가 엄습해 와서 기겁을 하고 수면 위로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뭔가가 내 발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식은땀을 흘렸던 적이 있습니다.

 
문득 갈릴리의 돌풍에 흔들리는 배 위의 제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에 침몰 직전까지 가게 된 알렉산드리아호의 276명도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자연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떤 행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침착하고도 대범하게 상황에 대처하며 겁에 질린 사람들을 다독여 준 인물들이 있습니다. 배 안에서 주무시던 예수님이 그러했고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던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의연했고 분별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두려움도 그들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요? 그들의 내면세계 속에는 남들에게 없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에 대한 확신이요 사명에 대한 확신입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 또한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그분 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초막에서의 삶이나 궁궐에서의 삶이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 안에서’ 죽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간에 내 안에서 그분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될 때 그 믿음 안에서 창조주의 권세가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했고 바울은 수장될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여 섬에 상륙했습니다.

인생은 항해와 같다고도 하지요. 살다보면 잔잔한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항해할 때도 있고, 성난 파도에 배가 부서져 침몰 직전일 때도 있습니다. 목회도 사업도 분야가 다를 뿐 겪는 위기와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겁에 질려 소리 지르고 분별력 없이 행동할 것인가, 잠잠히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바라며 지혜롭게 행동할 것인가는 여러분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풍랑은 멎을 것입니다. 배는 안전하게 닻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그분의 놀라운 계획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키를 굳게 잡으시기 바랍니다. 등 뒤에서 여러분을 도우시는 그분의 손길도 의심 없이 느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