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뒤에 아직 왕정체제가 시작되지 못했다. 그래서 외부의 침략을 받으면 그때 그때 지도자를 뽑아 국난에 대처하던 때였다. 그런데 암몬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겁박해 왔다. 그런 위기인데도 군대 사령관을 맡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 더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의견을 모아 입다에게 간청했다. 최고 재판관이면서 군대 사령관직을 맡아서 암몬 자손들의 침략을 격퇴시켜 달라는 요청이었다.

“흥, 괘씸한 것들. 창녀 소생이라고 내쫓을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화살받이가 되라고?”

입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될 절호의 기회인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단연 전쟁에 나서기로 했다. 이미 그는 조직깡패 두목이었기 때문에 싸움에는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다. 우선 입다는 특사를 보내 암몬 자손과 협상을 벌였다. 깡패 시절에 배운 지혜였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지혜이기 때문이다. 협상이 실패하자 그는 직접 전쟁에 나섰다. 그런데 자신의 결단을 확고히 보여 주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한 가지를 더 맹세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시면 제가 집으로 돌아올 때 첫 번 영접 나오는 것을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사 11:30-31).

성경연구가들은 말한다. 입다는 가축들, 가령 양이 먼저 나올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그 당시 그 길르앗 지역 주택구조는 1층은 짐승들의 외양간이고 2층에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입다는 드디어 전쟁에 완전 승리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금의환향했다. 그런데... 집에서 첫 번 마중 나온 것은 가축이 아니었다. 자기 생명처럼 아끼는 무남독녀였다. 아버지의 승전 소식을 듣고 작은 북을 치고 춤을 추며 뛰어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얼마나 후회를 하였을까.

“공연한 객기를 부렸구나. 그냥 좋은 양을 잡아 번제를 드리겠다고 해도 되는 건데.”

그러나 때는 늦었다. 하나님께 했던 엄중한 맹세였다. 그래서 그대로 집행하려 했다. 그때에 딸이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며 간청했다.

“아빠, 사람이 한 번 죽는 거니까 그건 괜찮아요. 단지 시집도 못 가고 죽게 된 것이 억울하네요. 동네 친구들과 그 설움을 함께 나누도록 두 달만 말미를 주세요.”

그래서 두 달 뒤에 딸을 잡아 번제를 드렸다. 사람을 잡아 번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을 몰랐던 결과였다. 그래 그럴까,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특히 하나님을 걸어 맹세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마 5:33-37). 그건 하나님의 재량권을 침해하는 공연한 객기요 허세라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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