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발단은 지도자와 신앙 색깔의 차이였다. 그 교회를 개척한 바울을 적극 따르는 신자들이 있었다. 논리 정연한 가르침에 매료되었다. 아볼로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희랍 철학에 기초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풀어준 스승이었다. 베드로를 좋아하는 무리들도 있었다. 예수님에게서 직접 배운 생생한 간증과 교훈들에 감동된 이들이었다. 그래서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로 갈려져 싸웠다. 아니, 하나 더 있었다. 그리스도파라고 자처했지만 또 하나의 허울 좋은 짝패일 뿐이었다. 그렇게 되니까 상대편이 존경하는 지도자를 깎아내리는 고약한 일들이 빈발했다. 바울도 돈에 미쳤다는 악담이 돌아다녔다.

그처럼 싸움질에 중독된 것이 도대체 어떤 교회일까? ‘고린도에 있는 교회’였다. 그런데도 명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결코 단판 승부로 끝나지 않았다. 싸움은 싸움을 잉태했고, 분쟁은 분쟁을 내질렀다. 간통 사건으로 교회가 격전장이 되었다. 그것 때문에 고소와 맞고소를 하게 되어 법정 싸움으로 번졌다. 예배 때의 복장 문제로 싸웠고, 마지막이 가까운 때에 결혼하는 것이 옳으냐 독신주의가 옳으냐로 또 갈등을 겪었다. 우상에게 제물로 드려졌던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로 또 한 판, 성찬예식 문제로 더 한 판, 은사와 직분도 큰 싸움거리였는데 특히 예언과 방언이 최대 쟁점이었다. 더 있었다. 예수님은 정말 부활하셨느냐 아니냐에 목숨을 걸고 싸웠다. 부활 장면을 찍은 비디오가 없던 시절이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지금도 남아 있다. 규모가 옛날보다 훨씬 커졌다. 고린도교회 성전터와 그 때의 건물 잔해 그러니까 교회의 껍데기들도 상당히 많이 보존되고 있다. 매우 큰 성전인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교회의 알맹이인 예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두세 사람도 없었다. 싸움과 싸움, 분쟁과 분쟁을 거듭하다가 끝내 뿔뿔이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교회 가운데 2천 년 가까이 버티어온 교회가 하나 있다. 서머나교회였다. 비록 시설은 오막살이집 수준이었지만 그곳에서는 지금도 예배가 드려진다. ‘죽도록 충성했던’ 폴리캅 목사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이어받은 순교의 피가 지금도 남아 있는 셈이다.

고린도교회는 실로 모든 것이 넉넉한 교회였다. 출석 성도도 많아 대형교회였고, 재정도 튼튼했다. 건물도 엄청난 규모였고, 국제 항구도시여서 해외정보도 많았다. 특히 은사가 넘쳐흘렀다. 그런데 딱 한 가지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스도가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노라” (고전 1:13,23).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 말씀만 깊이 새겼더라면 그 교회도 2천 년을 버틸 수 있었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뇌수가 정지되고 심장이 멎으면 그것으로 육체의 생명이 끝난다. 그런데 교회의 뇌수요 심장인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으니 어찌 살아남겠는가... 그런데 그게 어디 고린도교회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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