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리버티 침례 신학교의 정현 교수님의 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태어나면서 부모는 이혼을 했고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살아야만 했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가정환경 탓이었을까요 소년은 문제 있는 아이 취급을 당했고 학교에서도 말썽을 많이 피우는 아이로 알려졌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은 그가 하도 말썽을 많이 피워 밧줄로 의자에 묶어 놓고 입에 테이프를 붙여 입을 막아 놓은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선생님은 소년이 언젠가는 감옥에 갈 것이라고 평가했다는군요. 소년에게 인생의 전기가 찾아온 것은 6학년때였습니다. 새롭게 만난 선생님은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많이 있어. 그러나 나는 그 내용들을 한 마디도 믿지 않아!” 소년의 인생은 그때부터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믿음이 소년에게는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선생님의 한 마디는 하나님의 은혜의 구체적인 시작이었습니다. 그 소년이 얼마 전 돌아가신 달라스 신학대학원의 하워드 핸드릭스 교수라고 합니다. 스윈돌, 제레마이어, 윌킨슨, 스탠리와 같은 영적 거인들이 그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는 말의 힘입니다. 칭찬과 격려, 신뢰와 축복의 말은 생명을 살립니다. 사랑이 그립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소년의 영혼은 선생님의 진심어린 말 한 마디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 점에서 6학년 때의 선생님은 존경과 박수를 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저는 소년이 문제아로 자라는 동안 그에게 충고나 격려, 권면의 말을 한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할머니도 그를 아꼈을 것이고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도 진심어린 조언을 해준 이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소년을 의자에 묶었다던 선생님이 특별히 자질이 부족하거나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분도 하다 하다 다른 묘안이 없어서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그런 훈계 방법을 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워드 핸드릭스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일로 기억하는 것은 6학년 때의 선생님의 한 마디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믿는다”는 말을 해줄 것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6학년 때의 선생님의 한 마디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결론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그때’가 가장 적합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라고 말하지요. 성령이 감동하시는 시간이고 하늘로부터의 거듭남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그 이전의 사건들과 사람들의 교육은 그 ‘때’를 채워가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때’는 하나님에게 속해 있습니다. 인간이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그때를 기다리며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노력들이 하나님의 때, 은혜의 때를 채워가는 것입니다.

자녀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성도들의 변화와 부흥의 때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혹시 그것을 위한 노력들이 열매로 나타나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까? 저는 그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취에 대한 하나님의 때를 생각하는 마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무엇인가가 확실하게 변하는 순간에 있었던 사람으로 저와 여러분이 거론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하는 노력과 베푼 사랑은 결코 ‘그때’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한 순간도 잊지 맙시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과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기왕이면 그때에 내 역할과 한 행동들이 기억될 만한 것이 되기를 기도해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생명이고 나의 역할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역할입니다. 때를 채워가는 것도 우리의 사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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