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추억하는 물건 하나가 또 있다. 고들빼기 컨테이너인데, 지금도 부엌 그릇을 두는 캐비닛 속에 보관되어 있다. 오래 전, 어머니가 아직 한국에서 섬 목회하는 동생과 함께 지내실 때였다.

한 번은 버지니아에 사는 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어머니가 밑반찬을 부쳐왔는데 언제든지 시간 있을 때 와서 언니 몫을 찾아가란다. 마침 주일 아침 교회 가는 길에 들르니 동생은 빨간 플라스틱 컨테이너와 함께 접은 종이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정작 꾸러미보다 종이쪽지의 사연이 더 궁금해서 얼른 펼쳐보니 삐뚤삐뚤 낯익은 어머니의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딸아, 나 본 듯하야 이 깨닢 고들빼기 맏이게 먹어라. 어머니가.”
히죽이 웃으며 쪽지를 건네 주는 동생 말이 더 걸작이다. 이 종이를 가보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란다. 밑반찬보다 몇 배나 더 가치가 있을 거라고 하면서.

컨테이너 안에는 고춧가루를 벌겋게 뒤집어쓴 깻잎과 고들빼기가 양쪽으로 나뉘어져 차곡차곡 담겨져 있었다. 밑반찬을 조금 보냈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지가 어저껜데 벌써 왔나 했더니, 그새 상할까봐 사흘 만에 도착하는 익스프레스로 부친 것이란다. 고들빼기에 스민 양념 때문에 무게가 많이 나갔는지 우편요금으로 13만 원이나 주었다고! 정말 못 말리는 우리 엄마다.

그런데 깻잎은 그렇다 치고, 고들빼기라는 이름의 이 산나물은 어디서 구했을까. 아직 테이프 자국이 선명한 컨테이너 안의 자줏빛 검붉은 고들빼기가 내게는 희귀식물처럼 신기했다. 한국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바로 밑의 동생 말이, 깻잎은 집 주위 텃밭에서 뜯은 것이지만 고들빼기는 어머니가 온 산과 들을 헤매며 캔 것이란다.

미국에 살고 있는 딸들에게 보내기 위해 성치 않은 몸으로 여름내 빈들을 헤매셨을 어머니. 담그는 과정에서도 몇 번이나 다듬고 씻고, 손을 보고 또 보고, 한 잎 한 잎 정성들여 버무리고 하셨을 터. 그즈음 남해안을 강타한 폭풍 매미 때문에 냉장고까지 작동을 하지 않아서 더 힘이 들었단다. 음식이 상할까봐 몇 번이나 옮겨 담고, 이리저리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기를 수십 번. 또 튼튼한 컨테이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육지로 동동걸음을 치느라 몸살까지 나셨다니. 엄마는 못 말려! 해가면서도 가슴 뭉클해지는 이 감동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부치는 값으로 사 먹을 수도 있으련만…….

그러나 누가 나무랄 수 있을 것인가. 노환으로 인해 미국 방문이 수월치 않은 어머니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눈물겨운 자식 사랑에 대해서. 그 사랑의 소비에 대해서. 줄기 하나, 이파리 하나 버리지 않고 두고두고 먹겠노라고 감사 전화를 하니 정작 어머니가 더 좋아하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쓴 것이 몸에 좋다는 선인들의 가르침 때문일까. 어머니는 옛날부터 유독 산나물이나 쓴 나물을 즐겨 잡수셨다. 진달래나 씀바귀 같은 것으로 김치를 담가서 맛있게 잡수시는 어머니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달고 부드러운 음식만을 선호하던 우리들에게 그런 어머니는 별천지의 사람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온갖 정크 푸드와 방부제와 인스턴트 음식으로 오염된 우리의 장기들을 이 쓰디쓴 고향의 식물로 정화시키길 원하시는지 모른다. 쓴 음식도 곁들여서 먹어야 단맛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어머니는 어쩌면 유배지와 같은 그곳에서 잠시 계셨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에는 성경책이 있고, 미국 딸들의 사진과 편지들이 있었다. 추억을 보듬고 사시는 어머니의 유배지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늘 천국이었을 터. 사진들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생각해냈을까? 텃밭의 깻잎과 고들빼기로 김치를 담가서 미국으로 보내자고. 고향의 일부를 조금 떼어서 태평양 너머 딸들에게 띄워 보내자고.

아끼느라고 그랬을까. 그동안 식탁 위에 오른 고들빼기 무침을 눈요기만 하다가 모처럼 한 번 맛을 보았다. 어느 주일예배 후 친교시간이었다. 먹어 보니 역시 맵고 쓰고 질겼다. 치아가 튼튼하지 못한 내게 국산 고들빼기는 그리 환상적인 음식은 못 되었다. 그러나 눈물을 찔끔거리며(매워서) 열심히 먹었다. 교인들도 멀리서 온 귀한 음식이라고 좋아하며 다투어 젓갈질을 했다. 우편료 이야기가 나오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우스갯 소리를 해가면서.

그날 저녁 어머니와 나는 장시간의 국제통화를 했다. 혈연의 끈처럼 질기고 질긴 고들빼기 뿌리 잘 씹어내고 있다고. 보내 주신 사랑 몸속에 차곡차곡 저장하고 있다고...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