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세계적인 곤충학자 파브르가 어느 날 날벌레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 날벌레들의 움직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던 파브르는 유심히 관찰하다가 뜻밖의 결과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날벌레들의 움직임은 그저 가장 앞에 있는 날벌레를 따라다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날벌레들은 태어나서 맨 처음 만나는 날벌레를 쫓아 평생을 돌아다니며, 심지어 가까운 곳에 먹이가 있더라도 맨 앞의 날벌레가 그것을 먹으러 가지 않으면 뒤따르는 무리도 그것을 먹으러 가지 않았고, 심한 경우에는 1주일 동안 그저 앞의 벌레만 따라다니다가 굶어 죽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위의 무리가 가는 대로 넓은 멸망의 길을 향해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있습니다. <조 다윗 전도사의 십일조를 넘어서”>라는 책의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반 기독교 사이트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악성 댓글이 뒤따르고 있었으나, 그 책의 내용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무조건 목사놈, 도둑놈, 또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은 날벌레와 같은 습성들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였습니다. 아무리 이곳저곳을 뒤져 보아도 이 책의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알아 낸 것은 이 책이 이미 오래 전에 절품된 소책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책을 읽은 사람도 별로 없었을 텐데 악성 댓글들이 흘러 넘친 것입니다. 다시 이곳저곳을 찾아서 겨우 “십일조를 넘어서를 읽고서”라는 서평을 찾았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찾아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서평을 쓰신 목사님들은 용감하신 분들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십일조를 넘어서를 읽고서"라는 서평과 다른 목사님이 쓰신 글 “십일조에 대하여”를 읽은 후에 십일조에 대한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 지금은 자유롭게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십일조를 올바르게 쓰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다만 아주 많지가 않을 뿐입니다.

서울에 소위 감자탕교회가 있습니다. 상가 2층에 있는데 그 아래층에 감자탕집이 있고 그집 간판이 커서 교회 간판을 가리고 있기에 가까이 가야만 보인다고 합니다. 그 교회 이름은 광염교회랍니다. 그곳의 교인들은 모두 재난구조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재난이 발생하여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그들 특유의 도구를 들고 달려간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서는 단지 십일조 한 종목의 헌금만 받고 있으며, 그 헌금 중에서 월100만 원만 은행에 잔고로 남겨 비상시에 대비한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 운영자금 규모는 최소한도이겠지요. 이 교회에 대한 책도 나와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책 제목은 <감자탕 교회>입니다. 절기 헌금 (부활절 헌금, 크리스마스 헌금 등)도 다음날에 모두 구제 헌금 등으로 집행하여 교회 내에는 잔고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다음은 전주에 있는 소위 깡통교회라고 하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누군가가 비행기 격납고 교회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바라크 건물입니다. 외부 모양과 크기는 보잘 것 없고 내부 또한 초라합니다. 인터넷에 사진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 또한 헌금 종류는 오직 십일조 하나뿐인데 매월 들어온 헌금 중에서 50% 이상이 교회 밖으로, 이웃돕기용으로 나간다고 합니다.

다음은 부산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교회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을 할 수 없으나 이 교회에서는 월말에 건강 문제가 있는 아동들의 수술 혹은 치료비로 십일조 헌금이 쓰여진다고 합니다.

이들 교회들은 교회 건물의 크기와 각종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 있으며 오직 주위의 이웃돕기에 주력하고 있어서 교회는 협소하고 초라하고 각종 프로그램들도 없으나, 각기 신도수가 2,000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의심스럽습니까? 찾아 보시면 됩니다. 또 그런 교회의 교인들은 신이 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작은 돈이 모여서 큰 강물이 되어 밖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또 이들 교회들의 목사님 설교는 무언가 다르겠죠?  이들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믿음은 나와 어떻게 다를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교회에서 다툼이 없고 구린내도 안 나겠죠?

내가 다녔던 서울 어느 지역교회 목사님은 어느날 설교 중에 “내가 아는 친구 목사는 37종의 헌금 종류를 사용하여 헌금을 신도로부터 받고 있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무슨 세무 공무원인가요? 그분은 지금 부자가 되어 있을까요? 돈, 돈, 돈, 맘몬 숭배자인가요? 그 말씀을 하셨던 목사님의 교회에서도 11종류의 헌금을 걷고 있었으며, 당연히 밖으로 나가야 할 구제 헌금, 선교 헌금 등의 목적 헌금도 성도들로부터 거두었지만 그 돈은 교회 안에 머물러 목사님 뒷치닥거리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 이곳 미국에 있는 교회들도 헌금들이 쓰이는 용도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만의 과한 생각인가요?

또 내가 다녔던 지역교회들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주로 십일조를 꼭 내야 한다는 이야기와 교회에 헌신,봉사, 그리고 교회 확장을 위한 건축, 교회 번영 등의 이야기만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에 대해 무지했더랬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하던데 하늘에서 듣고 내려다보고 계실까요?

위에서 예를 든 교회와는 전혀 다른 양태를 보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 교회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아 구별되어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Matthew Henry).

경기도 안양 근교 야산 중턱에 있는 커다란 교회의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교회 내외부를 보여 주는데 굉장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자부심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그 큰 건물 때문에.  이어서 목사님 설교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 돈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아들 돐반지를 내놓으셨고, 어느 권사님은 나이가 많으셔서 어려울 텐데도 건축 헌금을 내놨습니다." 등등, 온통 돈 이야기뿐이었습니다. 그 후 장로라는 분과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넘어 갔는데 그 장로 이야기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지금의 교회 건물을 여의도 순복음교회 건물보다 더 크게 지었고, 그로 인해 매월 은행에 지불하는 돈이 많아서 매주 목사님 설교시에 돈 이야기를 해야만 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런 건물을 짓기 전에도 이미 설교시에 온통 돈 이야기 뿐이었을 것이고, 또 빌린 돈들을 다 갚을 때까지 온통 돈 타령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 준다고 하지 않을까요?  거기에 출석하는 신도들은 예수님 얘기와 구원에 대한 설교를 언제 들을까요?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고 했는데 말입니다(롬 10:17).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0: 2). 혹시 교회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구원을 받았다는 거짓 안전감이 주는 평안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근자에 미국 L.A.에 있는 어느 한국 교회가 크게 성전을 짓다가 파산하여 은행에 차압을 당했다고 합니다.또 많은 미국 교회들도 교회 건축 융자금을 갚지 못하여 은행으로 넘어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들도 들려옵니다.

작년에는 수정교회(남가주에 있는)를 관광차 방문했는데, 그 대지의 넓이와 건물들의 규모 그리고 설치된 시설들을  보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교회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신문지상에 기사로 나와 있었으니 모든 분들이 이미 아실 것입니다.

얼마 전 (2013년 12월 초)에 인터넷을 통하여 서울에 있는 “사랑의 교회”가 엄청나게 큰 건물을 짓고 이사했다는 기사와 함께 그 교회의 전경 사진이 게재되었는데, 그것을 본 순간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굉장하고 호화스러운 건물이었으니 그 내부는 또 얼마나 호화스럽겠습니까?

그런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늘 관광하는 기분일 것 같습니다. 그 기사는 건물을 짓는 데 물경 삼천억 원이 들었다고 써 있었습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또 말하기를 이전 건물이 좁아서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데 불편하였고 또 각종 프로그램을 편성, 운영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서 새로운 건물을 지어서 이용한다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왜 여러 곳으로 나누어서 예배를 드릴 수는 없었는가?' 라고 묻고 있었습니다. 아울러서 입당 예배시에 담임인 오정현 목사가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기사를 마감했습니다. “이제는 가난한 자를 돌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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