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개척을 해서 일 년을 지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주한인교회들 가운데 창립예배 드린다며 호화판 광고를 냈지만 폐업한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죽어버린 교회가 얼마나 많을까. 그것도 일 년 안에 말이다.

창립 첫 돌을 맞은 교회에서 ‘예수 결사대’가 있어야 한다는 격려사를 했다. 하나님은 기드온과 300 용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셨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도시국가가 극도로 타락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용사 10명만 있어도 지켜내겠다고 하셨다. 겟세마네 동산 기도회에서 잠에 취한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던 주님의 외침도 그런 깨우침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튼튼히 세워지려면 단 한 사람의 순교신앙이면 넉넉한 것 아닐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대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한 알의 밀이 되었던 까닭에 인간의 셈수로는 전혀 불가능했던 기독교의 로마 정복이 실현되지 않았던가.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고,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목이 잘려 죽었고, 안드레는 소아시아에서 X자형 십자틀에 달려 죽었고, 빌립은 터키에서 순교했고, 바돌로메는 아르메니아에서 매 맞아 죽었고, 도마는 인도에서,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작은 야고보는 이집트에서, 유다는(가룟 유다가 아닌) 페르시아에서, 시몬은 십자가에 처형되었고, 맛디아는 에티오피아에서, 그리고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순교를 피한 제자는 요한이었지만 그도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다가 극적으로 살아 남았던 사실상의 순교자였다.

목사들이면 누구든지 이 사실을 설교에 포함시키지 않는 이가 없다. 정말 청산유수로 설교한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 걸지 않는다.

“담임목사님도 이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걸지 않는데 어느 평신도가 목숨을 걸겠습니까?”

툭하면 더 큰 교회로 야반도주하는 담임목사들의 행태가 성도들을 분노하게 한다. 작은 교회에 목숨을 걸지 못하는 목사가 큰 교회에 가서 뼈를 묻겠다는 건 하나님을 사기해 먹는 것이 아니냐는 험악한 비난이다.

큰 교회로 부임한 목사들이라고 입이 없는 건 아니다. 글 쓰는 이도 한국과 미주의 대형교회 담임으로 청빙 받고 한때 자기합리화의 꾀를 부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도매금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

아무튼 하나님은 목숨을 거는 목회자를 지금도 찾으신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요 10:11)는 말씀 그대로다. 목숨 걸고 사역하는 목회자가 열 명만 넘어도 기독교는 끝까지 살아남는다. 개체교회의 경우 목숨을 거는 사람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 교회는 살아남는다. 성삼위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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