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눔 내외가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반갑기보다 귀찮은 마음이었다. 직장에 휴가를 내기도 그렇고 저녁에 무언가 해먹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만성피로가 반가움이나 보고픔의 감성을 삼켜 버린 듯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과는 달리 몸은 저절로 밑반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낮에 엄마가 없더라도 찾아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을 궁리하고 있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그리고 목요일 아침.

몸도 시간도 따라주지 않아 밑반찬에 생선, 밑반찬에 고기식으로 저녁 같이 먹고, 콜로라도에선 맛있는 짜장면을 먹을 수 없다 해서 짜장면 사먹고, 그 덕분에 다음날 퉁퉁 부어 고생한 게 전부여서 그랬을까. 큰눔이 뭐가 미안한지 자꾸 어깨 안마를 하겠다고 덤벼서 그랬을까. 아니면 큰눔이 수 년 전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국에서 만나뵙고 온 외할아버지(아니 내 아버지)의 모습을 큰눔이 갑자기 추억해서였을까. 아니면 한밤중에 시청한 영화 때문이었을까.

큰눔 내외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출근 전에 둘을 위해 딸기를 씻고 캔털롭을 먹기 좋게 자르고 케익을 접시에 가지런히 놓고 비닐랲으로 싸는데 눈물이 푹 쏟아진다. 엉엉 울고 싶어진다. 감성은 일상의 무게에 눌려 고사할 지경이고, 만성적인 피곤에 이성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건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는 큰눔에 대한 소소한 체험들을 사진첩처럼 간직하고 있고, 영혼은 애증 너머 포기를 모르는 사랑으로 큰눔바라기를 하고 있었나보다. 눈으로 보면서도 증폭되는 그리움, 서운하고 야속하고 얄미운 이유를 수십 가지 들먹여도 눈 먼 사랑은 그저 좋단다. 큰눔이 그저 사랑스럽단다.

전날 밤 막내가 방에서 소리쳤다. “엄마가 보고 싶어하던 영화 다운받았어.” “나 목욕해야 해.” “빨리 해 기다릴꼬야.” 어젯밤에 모처럼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코미디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시작부터 웃음이 나오는 게 아니라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고였다.

 

영화 제목은 <수상한 그녀>
70세 할머니가 20세 꽃띠 처녀로 잠시 동안 돌아간다는 판타지 코미디다. 올해 초에 개봉되어 흥행 톱 3를 유지했으며 총 관람객수는 860만 명이었단다.

영화의 도입부는 대학 강의실이다. 주인공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의 유복자 외아들(성동일)이 국립대학 노인복지학과 교수로 나오는데, 학생들에게 노인에 대한 느낌을 말해 보라고 한다. “깊게 파인 주름과 기미, 검버섯, 탑골공원, 느린 거북이, 뻔뻔스러움, 퀴퀴한 냄새...” 교수가 한숨을 쉰다. 좋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서이다. 나의 멀지 않은 미래, 엄마의 현재가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살짝 저려온다.

주인공 반 교수의 집도 예외는 아니다. 시어머니 오말순씨로 인한 며느리의 스트레스 지수는 갈수록 높아지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심장에 무리가 와서 수술까지 받는다. 손주들은 엄마가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자 하고, 아들은 고민에 빠지고, 억척 할머니 오말순씨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만다.

걸찍한 사투리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누구에게도 지는 법 없이 억척스레 살아온 오말순씨도 세월을 이길 수 없는 법.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일하는 노인 카페에서 예기치 못한 수모를 당하면서 신세 한탄이 쏟아진다. 유복한 지주의 막내딸로 태어나 사랑 듬뿍 받고 크다가 남자 하나 믿고 시집 갔더니, 서독 광부로 지원해서 돈 벌어온다던 남편은 머나먼 타국에서 죽고, 이미 임신한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신세였다고... 기댈 곳이라곤 자신과 핏덩이 아들밖에 없어서 아들을 ‘붙들이’라 불렀다고... 장바닥을 전전하며 악착같이 먹이고 공부시켜 교수 만들었으니 이만하면 장한 어머니 아니냐고...

 

 

아무리 큰 소리 쳐보아도 한물 간 퇴물 취급 받는 세상에서 그녀가 갈 곳은 요양원뿐이다. 버스 정류장에 힘없이 앉아 있는 그녀의 눈에 갑자기 ‘청춘사진관’이라는 간판이 들어온다. 더 볼썽 사나워지기 전에 영정 사진이나 한 장 찍겠다고 들어간 그곳의 사진사가 “50년 젊어 보이게 해드릴게요” 하더니 진짜 20세가 되어 버렸다. 알맹이는 70인데, 껍데기는 20이다. 이때부터 젊은 오말순역을 맡은 신은경의 눈부신 활약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삼빡한 코미디에 젖어든다. 좌충우돌하는 장면들이 배꼽을 잡게 만든다.

젊어졌어도 오말순은 먼 곳으로 가지 못한다. 그녀를 곁에서 돌보아 주고 지켜 주는 옛 머슴(단짝 친구, 박인환)의 집에 기거하면서 집 주변만 맴돈다. 유행과는 한참 먼 옷을 입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70세의 알맹이가 하고픈 말 다하는 젊은 껍데기 오말순은 시대착오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나이답지 않게 모성애 가득하고 따스한 이미지로 각박한 세상 한복판에 우뚝 선다. 과거의 잘 나가던 노래 솜씨까지 더해져 방송 무대를 장악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도 생긴다. 70살의 알맹이가 옛 친구에게 고백한다. “심장이 벌렁거려. 아직도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나 봐.” 뭐 이 비슷한 대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오말순은 가족을 포기하지 않는다. 손주가 다쳐서 수혈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자신의 피를 뽑으면 껍데기가 다시 70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면서도 손주를 살리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온다. 이미 정체를 알아 버린 옛 동무(박인환)가 말리고, 아들까지 이제는 모진 고생 다 잊어 버리고 멀리 훨훨 날아가라고 말리는데도 오말순은 담담하게 말한다. 선택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 해도 나는 지나온 그 인생을 그대로 살겠노라고...

코미디의 결말은 당연히 해피엔딩이다. 온가족이 사랑으로 뭉친다는 해피엔딩.

큰눔 내외는 오늘 오후에 다시 자동차로 하루 꼬박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자기들의 집으로 간다. 자동차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거리여서 비행기 타고 간다. 그들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고, 서독이나 중동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이미 독립한 아이인데 왜 이리 가슴이 아프지? 그러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서울에 계신 엄마에게도 내가 유일한 핏줄인데, 기껏 인사나 한다고 한 열흘 방문했을 때마다 미국에 있는 내 집으로 간다고 돌아서는 내 등을 바라본 엄마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지금의 나보다 훨씬 훨씬 더 아팠을 텐데. 한국과 미국이 비행기로는 열몇 시간 거리일지라도 마음대로 오고갈 수도 없으니 얼마나 아득했을까? 이제는 버티는 힘도 모자란 팔순의 노인인데 어떡하지? 돌아가신 아버지는? 임종 직전에 아버지를 만났다면, 아마 아버지도 나도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울지도 못했을 것 같다.

코미디였는데, 이 영화가 자꾸 나를 슬프게 한다. 내게도 판타지의 공간이 잠시만이라도 허락되었으면 하는 실현불가능한 꿈을 꾸게도 된다. 한 달에 한 번씩 엄마와 명동에서 데이트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단 하루만이라도 철든 딸로서 엄마와 동행하고 싶다.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간병인 노릇을 딱 하루만이라도 해보고 싶다. 큰눔 때문에, 아니 그눔의 영화 때문에 며칠 가슴앓이를 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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