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공동체를 위한 상호존중의 대화(50)

당신도 나처럼 살아 봐,  Black Like Me

건장한 백인 남성이 있었다. 그는 미국 텍사스 출신 백인으로 신학도이자 음악이론가, 사진작가, 소설가였다. 그의 이름은 존 하워드 그리핀(John Howard Griffin). 그는 1959년 10월, 남부 흑인에 관한 연구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흑인이 되어 7주간 살아 보았다.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는 체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피부과 전문의의 도움으로 색소 변화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5일간 자외선에 온몸을 쪼여 피부색을 검은색으로 변화시키는 심한 고통까지도 감내하였다. 그는 머리를 삭발하고 염색약을 칠함으로써 중년의 완전한 흑인으로 거듭났다. 그는 당시 흑백 인종 차별이 가장 심했던 미국 남부의 딥 사우스(Deep South,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등의 남부 지역) 지역을 여행하며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당하는 흑인들의 삶을 7주간 경험하고『Black Like Me: 블랙 라이크 미』(살림, 2009)라는 책에 담았다.

변한 것은 오직 피부색뿐

오늘날 ‘아프리카계 미국인’(Afro-American)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이전, 차별과 경멸을 내포한‘니그로’(negro)라는 단어가 쓰이던 시절의 체험기다. “흑인의 하루 일상은 자신의 열등한 지위를 계속 확인받는 일로 이뤄져”(94쪽) 있음을 그는 절감한다. 피부색이 곧 존재 증명서였다.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있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흑인 사용 금지’라는 팻말이 없어도 ‘신사용’ 화장실은 ‘백인 신사’만 쓸 수 있는 곳이었고, 흑인은 이른바 ‘격리된 시설’(separate facilities)에서 따로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전차를 탈 때에는 백인들이 먼저 올라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버스에서 백인 중년 여성에게 미소를 건네며 옆자리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가 그 여성으로부터‘뻔뻔스럽다’는 핀잔을 들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뭐 기분 상하게 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내 피부색이 여자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다.(104쪽) “그러니까 백인 여자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해야 해요. 사실 땅바닥을 보거나 다른 데를 봐야죠.”(...)“영화관 앞을 지나다 보면 바깥에 포스터를 붙여 놓잖아요. 그것도 쳐다보면 안 돼요.”(118쪽)

뉴올리언스의 유명 식당 앞에서도 그리핀은 머뭇거린다. 백인이었을 때와 다름없는 식욕과 미각을 지녔고 심지어 지갑 사정까지 똑같았지만, 이제 그는 식당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하물며 식당 앞에 놓인 메뉴판을 바라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커피숍도 들어갈 수 없었다. 혹시라도 길가에 앉아 쉬고 있으면, 순찰 중인 경찰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기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는 백인들 앞에서 ‘없는 사람’ 혹은 ‘보이지 않는 사람’, 인간의 모습을 한 형제가 아닌 전적인 타자, 이방인, 국외자,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에게 호의를 베푸는 백인들도 있었다. 그것은 인간적인 정이나 우호의 감정이 아닌, 흑인들의 성생활에 대한 자극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을 뿐이다.

그는 여행 내내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는 고독과 절망을 경험하였다. 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가 기뻤다. 수도꼭지를 틀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고, 시원한 물로 세수까지 할 수 있었다. 문을 닫으면 경멸의 말도, 증오의 시선도 피할 수 있었다. 흑인들은 일상화된 ‘인격 말살’(character assassination)의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체험한 것이다.

백인의 특혜(White Privilege), 그것을 넘어

흑인 사회에서 흑인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흑인의 현실을 이해해가던 그리핀은 12월 15일, 7주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다시 백인 사회로 돌아온다.

“경찰은 내게 다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나는 성공적으로 백인 사회에 돌아온 것이다. 다시 일등 시민이 되었으며, 모든 카페와 화장실, 도서관, 영화관, 콘서트, 학교, 교회의 문이 일시에 활짝 열렸다. 한동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기쁨 가득한 해방감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나는 길 건너 식당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있는 백인 옆의 좌석에 자리잡고 앉았다. 웨이트리스가 나를 보고 밝게 웃었다. 이건 기적이었다. 음식을 주문하자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졌다. 이 역시 기적이었다. 나는 화장실에 갔다. 아무도 나를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뭐하는 거야, 검둥이?”라는 말을 하는 이도 없었다.”(228쪽) 백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블랙 라이크 미』는 흑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이 책에서 화자인 나(그리핀)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한 인간을 판단할 때 인간성 면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의 피부색이나 철학적으로 ‘우연한 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미친 상황인가 하는 점을 보여 주고자 했다.”(363쪽)

“여기에 담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파괴하는 사람들에 관한,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다. (중략) 또한 이 이야기는 박해받고, 빼앗기고, 미움 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독일에 있는 유대인일 수도 있고, 미국 내에 흩어져 살고 있는 멕시코 사람일 수도 있으며,‘열등한’ 집단에 속한 다른 누구일 수도 있다. 세부적인 것들만 다를 뿐, 결국은 같은 이야기다”(머리말 일부)

담대한 희망이 숨조차 쉴 수 없는 절망으로

그리핀이 흑인들의 삶의 자리에 서 본 지 이미 50년이 지났다. 그리고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으로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담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인종차별 철폐 후에 남아 있던 차별과 분리에 종지부를 찍고 마틴 루터 킹이 꾸었던 꿈이 실현되리라고 기대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그런데 공권력에 의한 차별은 고착화됐고, 경제, 교육 등에선 50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차이가 심해졌다.

흑인들이 가장 분노하는 건 인종 편견으로 작동하는 공권력이다. 미국에서 젊은 흑인 남성이 경찰에 사살될 가능성은 젊은 백인 남성의 21배에 이른다. 최근 클리블랜드의 백인 경찰은 장난감 총을 든 12세 흑인 소년을 사살해 논란이 됐다. 뉴욕에서 에릭 가너는 비무장이었는데도 체포 과정에서 목 조르기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해 죽었다. 숨막히는 현실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흑인의 삶과 생명이 주요 문제로 미국에서 떠오르고 있다. Black Lives Matters, 흑인들의 삶,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당하고 목숨을 잃는 현실에 저항하며 미 전역, 태평양에서 대서양 연안까지, 미시건 호변에서 플로리다 바닷가까지 항의 데모가 계속된다. 심지어 보수적인 교단에서조차 이는 분명 잘못이라고 보고 항의 데모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식의 전환이다. 피부색에 의한 차별, 출신 차이에 의한 차별, 빈부 격차에 따른 차별, 학벌에 의한 차별, 권력과 지위에 의한 차별, 성 차별 등 우리들의 삶 속의 무수한 차별을 넘어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형제자매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핀이 경험한 그 차별은 오늘 우리들의 삶의 구석구석에서도 존재한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사건은 우리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차별의 모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주는 일례이다.

인식을 전환한 다음에는 복음을 읽고 들어야 한다. 복음에 감동만 하지 말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차별당하는 현장에서 제도적, 법적, 사회적 개선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오늘날 소수인종들이 누리는 모든 법적인 지위는 저항과 투쟁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함께 연대하며 저항하며 변화를 이뤄낸 결과들이다.
아마 지금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변화의 때인지도 모른다. 시편 85편은 노래한다.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 나가고,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가리라.” 정의가 없이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분께서 오시면 오늘의 현실에서 어떤 일을 하실까?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