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의 이름과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있었다면, 당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2000년 12월, 메릴랜드 주의 가장 큰 일간지 중의 하나인 “더 볼티모어 선(The Baltimore Sun)”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지역 졸업생, 로즈 장학생이 되다.” 로즈 장학 재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국제 장학 재단으로, 영국 태생의 남아프리카 정치인이었던 세실 로즈(Cecil John Rhodes)가 죽은 해인 190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을 영국 옥스포드 대학으로 안내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재단이었습니다. 신문 기사의 주인공은 당시 존 홉킨스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웨스 무어(Wes Moore)였습니다. 그는 로즈 장학생이 되어, 이듬해 가을 영국 옥스포드 대학원으로 들어가 졸업때까지 전액무상으로 공부했습니다. 옥스포드를 졸업한 그는 흑인여성으로는 최초로 미 국무장관이된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의 특별보좌관이 됩니다.

그런데 2000년 12월 그 날, “더 볼티모어 선”의 또 다른 지면에 사람들의 관심을 끈 기사(記事)가 실렸습니다: “웨스 무어(Wes Moore), 경찰을 죽이고 달아나다.” 로즈 장학생이 된 웨스 무어와 같은 이름의 한 청년이 경찰을 죽인 사건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사건 발생 12일 후, 웨스 무어는 필라델피아의 한 집에서 체포되어 결국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미 국무장관 특별 보좌관이 된 웨스 무어는 자신과 똑같은 이름으로 같은 날 같은 신문 지면에 기사화된 웨스 무어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추적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자신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쩌면 한두 번 부딪혔을지도 모르는 동일한 생활환경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2010년에 웨스 무어는 자신과 똑같은 이름인 웨스 무어의 일대기를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제목은 “또 다른 웨스 무어(The Other Moore)”였습니다. 이 책에서 웨스 무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으스스할 만큼 무서운 진실은 그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슬픈 진실은 나의 이야기가 곧 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는 많은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같은 이름도 있고 다른 이름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이름이라고 해서 서로 비슷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4장과 5장에 나오는 두 사람의 “에녹”과 두 사람의 “라멕”이 그런 경우입니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에녹은 가인의 아들로서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에녹 성(城)에 살면서 하나님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에녹”은 300년 이상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간 사람입니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라멕” 역시 자신을 가인보다 더한 죄인의 삶을 산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 십 칠 배이로다”(창 4:23-24). 그러나 창세기 5장에 나오는 “라멕”은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의 아버지로서 바른 신앙의 유산을 아들에게 전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를 낳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창 5:29). 비록 말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을 살았지만, 그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갈망했고, 그런 소망과 갈망이 아들 노아를 통해 이루어지길 바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에도, 두 사람의 유다가 나옵니다. 한 사람은 갸룟 출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나사렛 출신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판 사람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역시 같은 이름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적잖게 만납니다. 그럴 때면, 한 번 더 관심 있게 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기도 합니다. 물론 아예 무시하고 지나칠 때도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이름과 같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났습니까? 만약 어렵잖게 만났다면, 동일한 이름의 그를 보고 가졌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삶과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우리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그 삶의 중심에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삶의 중심에 있다면 우리는 같은 삶을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의 삶의 중심에 없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같은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각자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다면, 우리는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삶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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