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허치슨 박사는 제가 공부한 탈봇 신학대학원(Talbot School of Theology, Biola University)에서 성경주석(Bible Exposition)을 가르치는 저명한 성경학자입니다. 한 번은 그가 성탄을 앞두고 가족들과 함께 워싱턴 주를 향해 자동차를 운전해 가다가 한 치 앞도 분간키 어려운 짙은 안개를 만났습니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었던 그는 근처의 모텔에 들어가 다음 날 아침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평생에 그런 안개는 처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자신의 책에 남겼습니다: “안개는 우리의 모든 계획을 바꾸어 놓았다.” (「Thinking Right When Things Go Wrong: Biblical Wisdom For Surviving Though Times」John C. Hutchison)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짙게 드리운 안개는 개인과 가족의 미래를, 그리고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어렵고 힘든 환경, 안개 같은 인생 길이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는 노아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창세기 9장을 읽노라면 그런 노아의 모습을 상상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노아의 그 모습을 본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 주려는 생각보다 형제들에게 말하는 것을 더 우선으로 여겼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노아는 술이 깬 후 함의 후손에 대해 저주를 합니다.

왜 노아는 술에 취해 수치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함의 후손은 어차피 노아 자신의 자손들인데 왜 저주를 퍼부어야 했을까요? 무엇이 노아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 했을까요?

성경은 홍수 이전의 노아를 가리켜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고 기록합니다(창 6:9). 뿐만 아니라, 창세기 7장 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이 모습을 홍수 후에 술에 취하여 수치를 드러내고 둘째아들 함의 자손까지 저주한 모습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까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노아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될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눈에 비친 세상은 홍수로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 노아의 마음에는 사나운 홍수에서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만 있었을까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만 있었을까요? 물에 다 씻겨진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부푼 꿈만 가득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잠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노아의 내면에는 뭔가 모를 만감의 교차가 있었을 겁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장을 빌리고, 음식을 나누고, 안부를 묻던 이웃들을 생각했을 겁니다. 가깝게는 사돈들과 세 아들들의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멀게는 홍수에 죽어가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을 겁니다. 자신의 가족들과 방주에서 나온 짐승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세상을 바라보며, 노아는 과거에 대한 회상이 점점 커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이 엄습해 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살된 그 많은 생명체에 대한 안타까움과 홍수 후의 세상에 대한 외로움, 두려움, 슬픔이 그의 내면을 짓눌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고, 하나님으로부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메시지를 들었지만, 그 넓은 땅에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게 노아의 눈앞에 펼쳐진 안개였습니다. 홍수 전과 홍수 후의 노아가 다르게 행동한 이유였습니다. 그의 신앙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홍수로 함몰된 현실 속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남은 자신의 여덟 가족을 바라보는 노아의 마음이 안개 속에 녹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을 언급하는 히브리서 11장은 홍수 후의 노아의 모습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노아뿐이겠습니까?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가슴이 무너지고, 입만 열면 탄식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생 길에 드리운 짙은 안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우리는 우리 자신, 인생, 삶의 목적,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너무 많은 질문들을 쏟아놓음으로써 잘못된 길로 발을 들여 놓지 않아야 합니다. 힘든 환경에 속지 않아야 하고, 뿌연 안개가 판단을 흐리게 하지 않도록, 짓누르는 억압과 심적 통증이 바른 선택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안개는 곧 사라질 “증기”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1장 2절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헛되다”는 뜻의 히브리어 “하벨”은 “증기, 안개, 기체”라는 뜻입니다. 곧 사라지는 것, 없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 길에 끼는 안개는 곧 없어질 증기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잠시 있다가 사라질 안개에 의해 우리의 중요한 선택이 방해받지 않아야 하고, 우리의 바른 선택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안개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안개 뒤에 분명하게 서 계신 전능자 하나님을 늘 바라 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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