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많은 관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한 책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차이를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순서상 남자를 여자보다 먼저 만드셨습니다. 남자가 흙에서 직접 창조되었다면, 여자는 아담의 몸을 통해 창조되었습니다. 좀 더 다르게 표현한다면, 남자는 천연재료(?)에서 나왔고, 여자는 이미 한 번 가공된(?) 재료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차이는 창조된 직후 여자와 남자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처음 본 순간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우리는 종종 자식을 일컬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여자를 향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한 남자의 고백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자는 남자를 보고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기보다, 그게 여자와 남자의 다른 점이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좋아 보이고, 마음에 들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도, 여자는 남자보다 표현을 아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그 동안 살던 터전을 뒤로 하고 미지의 땅 가나안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600마일이 넘는 거리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 하나만 붙들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기나긴 여행 끝에 도착한 가나안 땅은 사람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기근이 한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살아 남기 위해 식솔들을 데리고 다시 애굽으로 향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분은 이런 해석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땅에 기근을 예비하고 기다리고 계셨다.” 참 그럴듯한 해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석의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가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평생 동안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마음”을 늘 확인코자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독자 이삭을 바칠 수 있는지까지 확인하셨습니다(창 22장).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을 한 아담은 오랜 기간 하와의 마음을 얻고자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아담 자신은 하와에 대한 속마음을 다 드러냈는데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하와의 마음을 얻고, 또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겁니다. 그런 예들 중의 하나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아야 하는데, 하와가 먹자고 하니까, 아무 반대 의사도 표하지 않고, 열매를 받아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와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종종 말씀하십니다(사 62:5; 렘 2:31-32). 그래서 항상 우리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마음 자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수원의 어느 교회에서 예배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는 규모가 상당히 커서 예배 실황을 생중계하려고 예배실 천장에 여러 대의 카메라가 움직이도록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권사님 한 분이 설교가 한창 진행중인 시간에, 예배 후에 마트에 가서 살 물건의 목록을 적고 있다가 그 모습이 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혔습니다. 설교중이던 목사님도 화면을 통해 보았고, 성가대원들, 그리고 그 교회의 모든 성도들과 중직자들, 심지어 외지에서 인터넷으로 그 교회의 예배에 동참하던 사람들까지 다 보았습니다. 당연히 하나님도 보고 계셨을 겁니다. 그 권사님의 몸은 예배당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마트에 가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예배 중이었지만 그 권사님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은 누구를 가장 많이 향하고 있습니까? 배우자입니까? 자녀입니까? 또 다른 가족입니까? 일입니까? 교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특히 예배중에 당신의 마음은 누구를, 그리고, 어디를 가장 많이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 이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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