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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튤립이 질문하는 것
주인돈 신부  |  성공회 한마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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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3  05: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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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오월은 튤립과 함께

시카고의 오월은 튤립과 함께 온다. 올해엔 튤립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시카고 보타닉 가든을 두 번이나 갈 기회가 있었다. 빨갛고 노오란 튤립, 분홍 튤립, 짙은 보랏빛 튤립, 심지어 검은 튤립까지 색색의 튤립들이 푸르른 녹색의 물결과 봄의 따스한 햇살과 함께 아름다움을 흩뿌리고 있었다. 연한 대롱에 매달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기품 있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튤립에게서 어떤 내공이 느껴졌다. 다른 색깔끼리 조화를 이루고 있는 튤립들은 ‘더불어 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마리온 퀴스텐마허가 쓴 『영혼의 정원』에서 튤립 이야기를 만났다.

튤립은 곧게 선 줄기 위에 단 한 송이 꽃만 피운다. 이런 형태의 꽃을 ‘터미널 플라워’(terminal flower)라고 부른다. 장미꽃 줄기에는 잎이 많은데, 튤립 줄기에는 잎이 없다. 이를 ‘꽃줄기(scape)’라고 한다. 독특한 튤립의 생김새는 튤립에 얽힌 다음의 전설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작은 마을에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다. 착하고 여리며 티없이 아름다운 소녀는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소녀에게 세 명의 청년이 동시에 청혼을 했다. 첫 번째 청년은 그 나라 왕자였고, 두 번째 청년은 용감한 기사, 세 번째 청년은 돈 많은 상인의 아들이었다. 왕의 아들은 “만일 나와 결혼해 준다면 나의 왕관을 그대의 머리에 얹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사는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돈 많은 상인의 아들은 “금고 속에 가득 들어 있는 황금을 전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녀는“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너무나 좋은 분들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제일 좋은 조건을 걸었다는 생각에 결혼을 해달라고 끈질기게 청혼을 했다. 하지만 소녀가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자, “당신은 평생 동안 결혼하지 못할 여자”라는 저주 섞인 욕을 퍼붓고 떠나버렸다. 소녀는 기가 막히고 황당해서 병이 들었으며 끝내 죽고 말았다.

그 사실을 딱하게 여긴 꽃의 여신 ‘플로라’가 죽은 소녀를 아름다운 튤립으로 태어나게 해주었다고 한다. 꽃봉오리는 왕관을, 잎사귀는 검을, 뿌리는 금덩어리를 닮았다고 한다.

당신은 무엇에 투자하는가?

시카고 지역에서는 오월이 되면 튤립 여행을 떠난다. 튤립이 피는 계절의 여행지는 미시건 주의 홀랜드(Holland)라는 작은 마을이다. 홀랜드의 상징인 풍차와 홀랜드 민속촌이 있다. 5월 중순에 주민들은 온 마을을 튤립으로 장식하고 튤립 축제를 벌인다. 튤립 하면 홀랜드 또는 네덜란드라고 불리는 나라가 떠오른다. 튤립은 네덜란드의 나라 꽃[國花]이다. 네덜란드의 튤립 수출, 튤립 구근 수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튤립은 본래 네덜란드의 꽃이 아니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꽃이다.

튤립이란 명칭은 중앙아시아에서 머리에 두르는 터번을 뜻하는 터키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터번이 잘못 전달되어 튤립이 되었다. 중세에 튤립은 술탄 술레이만의 정원을 장식하였다. 튤립은 오스만 왕가의 문장이었고 술레이만은 튤립을 ‘신의 꽃’이라고 불렀다. 중세에 터키인에 의해 관상용 꽃으로 개량되어 오랫동안 터키 사원이나 궁정 내에서 재배되었다. 16세기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서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도입된 후 개량되었다. 그리고 네델란드까지 가게 된 것이다.

마리온 퀴스텐마허가 쓴 『영혼의 정원』에는 튤립에 대한 작가의 느낌이 담겨 있다. 네덜란드에서 상류계층은 신분 상승의 상징으로 정원을 장식하기 위해 튤립 구근을 사들였다. ‘신의 꽃’인 튤립은 막대한 이윤을 보장하는 투기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1637년 2월, 튤립 시장은 붕괴되었다. 튤립의 투기와 네덜란드의 농부들 덕분에 우리들은 아름다운 튤립을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튤립으로 정원을 장식한다. 그런데 시인 루미는 튤립처럼 투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탄한다. 천상적 기질, 당신의 참 자아! 그것에 투자하라고, “당신은 무엇에 투자하고 있습니까?”라고 튤립이 질문하고 있다.

죽을 때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

사람들이 죽을 때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신의 삶,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무적인 삶, 다른 사람을 위한 삶, 눈치 보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엘리자벳 퀴블로 로스가 쓴 『인생수업』은 오랫 동안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로부터 배우고 경험한 인생수업, 즉 죽음으로부터 배운 인생의 지혜를 거꾸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죽어가는 사람들이 첫 번째로 후회하는 것이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장의 영어 제목은 Authenticity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 모두의 깊은 내면에는 자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어떤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에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퇴한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직업과 자신을 거의 동일시하는 삶을 살다가 은퇴하면,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일이나 직업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역할로도 규정되지 않는다. 대개 은퇴 이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는데, 젊은 시절부터 질문을 해야 하고, 그 질문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가 질문하였던 것처럼, 자기 자신에 투자하는 삶을 살아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튤립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의 모습, 생명의 신비를 드러내고 있다. 다른 꽃들도, 풀들도, 나무들도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에서 젊은이들의 멘토로 불리는 김난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젊은이들과 모든 사람에게 권고한다. “자기를 발견해야 ‘올인’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던질 수 없습니다. 결국 인생은 자기를 찾아 나가는 긴 과정입니다. 그 자기를 마흔에, 혹은 환갑에 찾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찾아 나가는 작업을 결코 중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10에서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비하고 오묘한 존재들이다. 시편 기자는 “당신은 오장육부를 만들어 주시고 어머니 뱃속에 나를 빚어 주셨으니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 이 모든 신비들, 그저 당신께 감사합니다”(139:13-14)라고 노래했다. 개역성서에선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고 표현하였다. 작품으로서 자기자신의 삶을 살고 그것에 투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시 오월이 되었다. 시카고의 오월은 텃밭에 모종을 옮겨 심는 계절이다. 시카고 보타닉 가든에선 튤립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해마다 구근을 옮겨 심는다. 텃밭 농사를 준비하는 나도 ‘인생의 텃밭에 올해는 어떤 모종을 심을까? 무엇을 심으면 아름다운 튤립처럼 꽃을 피우게 될까?’ 하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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