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의 인격과 신앙(15)

장수 시대에 살아남는 법?

지금 우리는 백세 장수 시대를 살고 있다. 최근에는 90세가 넘어 별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는 한국인 남녀의 기대수명이 전 세계 최초로 90세가 넘는 최장수 국가가 될 것을 전망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의 기대수명을 분석한 논문을 지난 2월 21일 영국 의학저널 ‘랜싯’에 실었다. 그 논문에 의하면, 2030년에 태어나는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90.82살, 남성의 기대 수명도 84.07살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2016년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1세(남자 77.5세, 여자 84.5세)이다. 2016년 현재,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79.8세이다. 100년 전인 1900년대 초, 미국의 평균수명은 47세였다. 앞으로 기대수명은 어떻게 될까? 2015년 2월 23일자 타임(Time) 잡지는 2015년도에 태어난 아기가 142살까지 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예상보다 훨씬 오래 산다는 것이다. 지금 50살 미만이 된 사람은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100세를 넘길 것이 분명하다. 47, 81, 그리고 142라는 숫자사이  어디엔가 나의 수명에 해당하는 숫자가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변화이다. 정보들이 새롭게 쏟아져 나오고 급변하고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워져야 한다. 지난 5월에 한국에서 온 가족들과 여행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저장 용량에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려 하는데 아들은 Google Photos, Iclouds, Amazon Prime Photos 등에 저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처럼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세상을 수용하고 배워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그의 책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2009)에서 ‘모든 것이 흔들리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란 질문에 ‘공부’라고 답한다.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며, 창조적 인재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 공부라고 주장한다.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일이며 살아가는 것 그 자체다.” 옛날, 산업화 시대의 공부는 특정한 시기,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배운 지식과 기술을 평생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생 배워야 한다. 평생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앎이 삶을 성장ㆍ성숙시켜

기술문명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식과 행동(삶)이 분리되었다. 기술과 과학을 가치 중립화시키면서, 학문과 인격, 앎과 삶, 지식과 행동이 분리되었다. 삶과 인격의 변화 추구와는 별도로 배워야 할 지식과 기술이 넘쳐난다. 근대 이전의 조상들은 공부와 됨됨이를 동일시했다. 삶과 앎을 동일시했다. 살기 위해서 배워야 하고, 배움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규호는 그의 책 『앎과 삶』(1972)에서 “앎은 삶에서 나타난 삶의 하나의 표현이며 삶을 위해서 있고, 늘 삶을 지향하고 있다”(14쪽)고 말했다. 앎이 삶이고 삶이 앎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영복은 공부란“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가는 여행”이라며, 배움이 실천적 행동, 앎이 곧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지 워싱턴은 가정교사에게서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읽기, 쓰기, 셈하기를 배웠을 뿐, 이후에는 독서를 통해 배우고, 배운 것을 실천했다. 워싱턴은 삶을 위해 앎을 추구하고, 성장을 위해 독학하며, 앎으로 삶을 살아간 사람이다. 이복형 로렌스, 페어팩스 대령처럼 유능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식 학교 교육이 미천했던 위싱턴은 독서를 통한 독학으로 자신을 성장시키고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제헌의회에 참여한 대의원 가운데 24명이 대졸자이다. 그 중 9명이 뉴저지의 프린스턴을 졸업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왕립대학(지금은 콜럼비아 대학)을 다녔다.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학력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이 제헌의회 대의원이 될 수 있었던 배경, 초대 독립군 사령관이 되고, 초대 대통령으로 선임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인격과 지도력이지만, 그것을 이루게 한 요인은 바로 독학, 독서였고 삶을 위한 앎의 삶을 평생 살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정치인들은 공식 학력이 없는 워싱턴을 얕잡아 보았다. 윌리엄과 메리 대학을 졸업한 토마스 제퍼슨은“조지 워싱턴은 주로 외적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독서를 적게 했으며, 주로 농업과 영국 역사에 관한 책을 조금 읽었을 뿐이다.”라고 회상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존 애덤스는“워싱턴는 글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많이 배우지 못했고, 심지어 글조차 잘 읽을 수 없었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은 대학을 나온 동 시대 정치인들과 달리 독학과 독서로 자신의 삶을 성장시켰고, 대학 나온 정치인들보다 먼저 초대 대통령에 선임되었다.

조지 워싱턴의 독서 

조지 워싱턴의 독서는 주로 실용적이었다고 많은 전기작가들이 주장한다. 그들의 말에도 타당한 면이 있다. 조지 워싱턴은 측량술, 농업 기술, 군대 지식, 정치  등을 독서로 배웠고, 실용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문학, 역사, 철학, 성경과 성공회 기도서 등 광범위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자신의 인격과 도덕적 삶, 정치적 이상을 심화시켜 나갔다.

15살 즈음, 워싱턴은 측량술을 독학해 측량사가 되었다. 군인이 되고, 특히 식민지 전쟁에서 브래독 장군에게 패배한 이후, 군사 지식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읽고 부하들에게 권장했다. 이런 지식은 그가 독립군 총사령관이 되었을 때 도움이 되었다.

조지 워싱턴은 장교의 길을 가고자 했지만, 영국 정규군의 장교가 되지 못하고 차별을 경험하자, 농장으로 돌아와 대농장주가 되고자 하였다. 이때 그는 농업에 관한 실용적인 책들을 읽었고, 농사를 어떻게 더 잘 지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농장주로 사는 동안, 워싱턴은 이복형 로렌스와 페어팩스 대령의 정치 활동을 옆에서 지켜 보게 되었다. 로렌스는 버지니아 하원의원이었다. 이때부터 워싱턴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 잡지를 정기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워싱턴이 제헌의회에 참여하고,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그가 그 당시 정치 철학 및 지식을 대부분 섭렵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제임스 메디슨, 알렉산더 해밀턴 등이 펴낸, 헌법 논쟁에 관한 『연방주의자:Federalist』는 거의 빼놓지 않고 읽고 이해했다. 그 결과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연방정부의 기초를 든든히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있을 때나 초대 대통령으로 재직했을 때, 원하기만 하면 제왕적 대통령, 또는 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겸손히 권력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물러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시대의 역사와 문학, 정치철학에 관한 책들 덕분이었다.

김형곤은 그의 책 『조지 워싱턴』(2011)에서 조지 워싱턴에게 평생을 두고 영향을 준 책으로 세네카의 『도덕론: Morals』과 조셉 에디슨의 18세기 초기 드라마인 『카토: Gato』를 언급했다. 세네카의 도덕론에선 “희생, 끈기, 용기, 절제 그리고 감정 절제의 가치”를, 카토에서는 절대권력자인 시저를 통해 나라에 대한 헌신과 봉사라는 정치철학을 익혔다고 생각한다(73-74쪽). 그 결과 워싱턴은 권력의 정상에서 평범한 농민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 역사에 많은 기록을 남긴 대통령이다. 그가 독립군 총사령관으로서, 초대 대통령으로서 장기간 국가를 위해 봉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일기를 썼고 2만 통 넘는 편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기록물 속에는 워싱턴이 광범위한 독서를 했고 삶 속에서 배움을 실천했다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독학으로, 독서로 자신의 삶을 성장, 성숙시킨 조지 워싱턴을 기억하면서 백 세 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나는 내 삶의 성장과 성숙을 위하여 어떤 독서를 해야 할까를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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