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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목사  |  방주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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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4  00: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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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어느 날, 딸 넷을 둔 친구 목사님과 통화를 하다가 딸이 있는 것이 너무 부러운 생각이 들어 전화를 끊자마자,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여동생이 생기면 어떨지 물어 보았습니다. 둘의 대답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Oh! No!" 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심방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Dr. Office에 잠시 들렀습니다. 몸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아내가 미리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사를 만난 지 20여 분, 그 의사는 “Congratulation!”이라며 환한 얼굴로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소망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시고 생명의 선물을 주셨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아내의 나이가 41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젊은 나이였지만, ‘출산까지 괜찮겠지?’라는 염려가 잠시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새 식구가 생긴다는 기쁨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두 아들을 앉혀놓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New Baby를 선물로 주셨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Oh, my…Oh my…”를 연발하며 뒤로 넘어지며, 뒹굴던 두 아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Mom, 많이 먹어야 돼요 그래야 baby가 건강해지니깐. 이제, 빨래는 우리가 할게요. 밥은 아빠가 하세요. Mom, protein 많이 먹어야 해요. Mom, 칼슘도 많이 먹어야 해요.” 그날 저녁 내내, 우리 집은 새 손님 맞을 준비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예배 말씀을 준비하며 든 생각은 ‘이 땅에 태어나는 생명에 대한 기쁨도 이렇게 큰데, 천국에서는 영적 생명이 새로 태어날 때마다 얼마나 큰 기쁨이 있을까’ 였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밤새 앓던 아내가 새벽녘에 하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기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우리 가정에 오기로 예정되었던 새 식구는 그렇게 두 달 동안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한 후 떠나갔습니다. 저희 가정이 경험한 두 번째 유산(流産)이었습니다. 

인류가 경험하는 출산의 고통은 창세기 3장 16절에서 범죄한 하와를 향해 이미 예고되어 있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여기서 언급된 “임신의 고통”과 “출산의 수고”는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 경험하는 통증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아이를 잃을 수 있는 아픔”을 함께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생긴 “고통과 죽음”을 온 인류는 출산 순간부터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류가 경험하는 그 고통은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첫째, 생명을 잉태하고 건강하게 낳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둘째, 생명의 주인은 육신의 부모(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분명하게 밝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기” 즉 “숨”이 사람의 몸(코)에 들어갈 때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15분」이라는 연극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장래가 유망한 30대의 젊은이가 박사논문을 제출해 놓고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일주일을 넘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며칠 앞둔 그에게 억만 장자인 삼촌이 죽으면서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는 편지가 배달되었습니다. 다음 날 또 다른 편지가 배달되었는데,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편지였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애인에게서 결혼을 승낙 받았다는 편지도 배달되어 왔습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며칠 사이, 이 젊은이는 평생을 분투해도 얻기 어려운 모든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억만장자의 재산도, 박사학위도, 결혼도 그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생명이 왜 소중한지 잘 알면서도 쉽게 간과하는 이유, 그리고 생명의 주인이 아니면서 생명의 주인인 줄 착각하며 사는 이유는, 우리가 그 생명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눈으로 우리가 가진 생명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벌써 7월입니다. 곧 12월이 될 것입니다. 그 와중에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또 연장될 것입니다. 현재 당신의 눈에 가장 소중하게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육신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영적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있습니까?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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