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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김영하 목사  |  헌스빌 한인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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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1  0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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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동물 행동학자이자 진화 생물학자인 클린턴 리차드 도킨스는 자신의 책 「에덴의 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연계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모든 고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공할 물리적인 힘과 복제가 다스리는 우주에서, 어떤 존재는 상처를 입고, 또 다른 존재는 운좋게 살아 남지만, 거기에는 어떤 법칙이나 인과 관계, 더 나아가 어떤 정의도 없다. 인간이 아는 우주는 그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을 뿐, 그에 대한 어떤 설계나 목적, 선과 악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잔인한 무심함만 있을 뿐이다.”

도킨스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를 비롯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저 우연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목적이나 의도는 찾아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나쁘지도 선하지도 않으며 그저 무신경한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의 무신론적 관점이 주는 지극히 당연한 세계관입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모든 게 공허하고, 헛되고, 무의미하며, 무가치합니다.

2012년 12월 14일 오전 9시 40분, 코네티컷 주의 뉴타운이라는 마을에 있는 샌디훅 초등학교에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린이 20명, 교장을 포함한 교직원 6명, 범인인 애덤 랜자의 어머니, 그리고 범인까지 총 28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아들 아이가 땅에 묻히던 순간, 대략 30초쯤,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나는 하나님을 믿었다. 숨진 아이의 영혼이 사라지는 것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감지했다. 그리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Wal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Timothy Keller)

이 여인을 비롯해서, 20명의 아이들을 떠나 보낸 모든 부모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힘이 되는 위로의 말은 무엇일까요? 위에서 언급했던 클린턴 리차드 도킨스의 관점에서,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목적없이 일어난 일들이니 잊으라. 무신경한 이 세상이 가져 온 의미도 없는 일이니 잊고 살라.”는 말을 한다면 과연 위로가 될까요? 무신론자들(atheists)이나 유물론자들(materialists)의 관점에서는 그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그들의 관점에서는 그런 말들 외에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 허무한 말들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유족들을 가장 잔인하게 짓밟는 말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과 딸이 아무런 의미없는 존재로 지워질 수 있을까요? 할머니보다, 엄마와 아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린 아이들이 무의미함과 무가치라는 잣대로 팽개쳐질 수 있을까요?

어린 자녀를 잃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위로의 말은 무엇일까요? 네, 없습니다. 어떤 말도 그들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감히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지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신론자들이나 유물론자들이 절대로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당시 28명의 장례식이 있는 날, 미국 동남부의 흑인 청년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그곳으로 달려가 슬픔 속에 있던 생면부지의 유족들을 위로하는 기도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은혜입니다. 그렇게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은혜이고, 그렇게 선뜻 달려 갈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뉴타운 총기 사건과 유사한, 아니 더 슬프고 아픈 일들이 생길 때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어떤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믿고 체험하며 사는 일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행여 진화 생물학자인 클린턴 리차드 도킨스와 같은 생각이나 말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그런 입장에 있지 않는 것 자체가 은혜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고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이 은혜 속에 매 순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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