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고, 죽음 앞에서도 써야 하고, 감옥에서도 자유롭게 하는 것"

백신 접종 장소에서 의료진과 주민들을 위해 첼로를 연주하는 요요마
백신 접종 장소에서 의료진과 주민들을 위해 첼로를 연주하는 요요마

김학천(수필가, 치과의사)

군가 했던 말처럼, 음악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고, 죽음 앞에서도 써야 하고, 감옥에서도 자유롭게 하는 것’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고 했나보다. 죽은 자를 위한 레퀴엠도 망자는 듣지 못하고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곡인 걸 보면 이 또한 카운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 모차르트는 ‘레퀴엠(진혼곡)’을 통해 ‘우리는 왜 죽어야 했는가?’라고 묻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오케스트라 유럽순회단이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마침 적군의 지휘관은 음악을 아끼는 장군으로, 이들을 사살하려는 부하를 만류하고 예우하면서 많은 연주를 하도록 배려하지만 단장과 장군은 여러모로 충돌한다.

그 와중에 미군 낙오병 두 명이 숨어 들어오고, 그들을 수색하던 매서운 초록 눈의 독일군 대령은 연습실 단원들 속에 섞여 있는 그들 앞으로 다가간다.

긴장하고 있던 그들 중 한 명에게 손에 쥐고 있는 악기를 불어보라고 한다. 망설이면서 일어나 연주한 곡은 미국 국가 ‘The Star Spangled Banner’의 첫 소절이다.

기분을 망친 대령이 나간 후 단원들은 그들을 탈출시킬 작전을 짠다. 마침 여성단원에게 관심을 보이는 장군의 마음을 이용해 데이트를 청한다. 장군의 방안 식탁에 촛불이 켜지고 와인을 마시며 은밀한 시간을 갖는 동안 두 낙오병은 높은 종탑 꼭대기로 연결된 외줄을 타고 올라가고 그에 맞추어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도 점점 고조되어 올라간다.

독일군 장군은 하필 이 곡이 연주되는 것에 심상치 않은 의도가 있음을 아는 듯한 말을 하면서 묘한 미소를 짓는다. 밖에서는 초록 눈의 대령이 탈출병을 찾아 곳곳을 뒤지는데 음악이 최고음으로 치달을 때, 외줄에 매달린 미군을 사살하는 총성과 선율은 어우러지고, 단원들은 참담한 얼굴로 연주를 계속한다.

결국 패전한 독일군은 퇴각 명령을 받고, 냉혹한 초록 눈의 대령이 단장을 총살하려는 낌새를 알아챈 장군은 그를 사살하고 연습실 한구석에서 공포를 쏘는 것으로 단장의 목숨을 살려 준다. “서로가 편안한 관계로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독일군 장군은 떠난다.

베토벤,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바그너 등의 주옥 같은 대표곡들이 나오는 영화 ‘카운터포인트’의 줄거리다. 음악을 이해하는 마음 앞에서는 너와 나 사이에 어떤 이념도, 체제도 논쟁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음악에는 사람의 혼과 양심을 불러일으켜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묶어 주는 위대한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악의 힘은 비단 영화에서만 아니라 실제로 처절한 전쟁터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몇 달 뒤, 유럽 서부 전선 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다는 벨기에 전장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과 독일군이 각각의 참호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 날은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잠시 총성은 멎었지만 습하고 퀴퀴한 참호 안에서 명절을 보내는 병사들의 마음은 스산하기만 했다. 

이때 독일군 참호쪽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술잔을 기울이며 부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적막한 전선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이에 감동 받은 영국군들이 화답하면서 전쟁의 긴장감은 누그러졌다. 급기야 독일군 장교가 참호 밖으로 나와 건너오고 영국군 장교가 마중나가 악수를 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프랑스군들도 일어섰다.

3개국 군 지휘관들은 그날 하루만이라도 전투를 중단하고 휴전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는 서로 음식과 샴페인을 나누어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며 가족 사진도 서로 보여 주고 주소도 교환하면서 전쟁이 끝나면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본래 휴전은 이브에만 하기로 했지만 전날 밤의 여운이 남아 싸움할 마음이 없어졌다. 서로의 진지를 오가며 병사들은 함께 축구 경기를 하고, 전투에서 희생당해 벌판에 방치되었던 전우들의 시신을 묻어주는 작업도 함께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면서 군사재판으로 이어지는 등 후유증을 낳았다. 그후 이런 기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인류는 전쟁, 역병, 천재지변 등 온갖 재난과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를 극복해 왔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도 전 세계가 맞닥뜨린 총칼 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백신이라는 무기로 반격에 나설 때까지 지치지 않고 용기를 북돋우고 희망을 잃지 않게 해준 것들 중에 음악이 있었다. 지난해 봄 전국 봉쇄령으로 집에 갇힌 이탈리아에서 음악이 지긋지긋한 삶을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처럼 말이다.

어떤 오페라 가수는 창문을 열고 이웃들에게 아리아를 선물했고, 이곳저곳 건물 발코니에 주민 각자가 악기를 들고 나와 합주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코로나19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의료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지친 의료진이나 환자들 모두에게 이런 감동의 순간마저 없었다면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얼마나 더 길고 힘들었을까?

지난 봄 매사추세츠 주 피츠필드의 체육관에서는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한 사람이 이상 증세가 없는지 기다리는 동안 대기자와 의료진을 위해 첼로 연주를 했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이었고, 연주자는 첼로의 거장 요요마였다.

백신접종 진행 중 소요와 긴장 속에서 갑자기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첼로 선율에 실내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거장의 첼로 연주 ‘깜짝 선물’에 감동한 현장 의료진과 주민들은 ‘정말로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다’며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감사와 위로의 순간이었다.

‘카운터포인트(대위법)’은 음악 용어로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선율을 동시에 결합시키는 작곡상의 기법을 말한다. 영화에서는 서로 다른 독일군과 연합군, 미국인 지휘자와 독일군 장교, 그리고 전쟁과 예술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말해 주었으며,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적이나 백신 접종 현장의 연주 또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의 말처럼 음악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고, 죽음 앞에서도 써야 하고, 감옥에서도 자유롭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라고 말했나보다.

죽은 자를 위한 레퀴엠도 망자는 듣지 못하고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곡인 걸 보면 이 또한 카운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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