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 “신(神)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계명이 있다.'

십계명
십계명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성서에 “신(神)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계명이 있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神)을 표기할 때 모음 없이 네 개의 자음만 사용해 ‘YHWH(YHVH)’로 적고, 이를 읽어야 할 때는 건너뛰거나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 (Adonai)’로 대체해서 읽었다.

이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 원래의 발음을 알 수 없게 되자 네 자음에 아도나이의 모음을 조합해 ‘야훼(야웨)’ 혹은 ‘여호와’라고 유추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절대 창조주와 유한한 인간을 구별짓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신(神)은 초월적인 존재이고 그 이름은 거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들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별이 존재했다. 소위 말하는 피휘(避諱)다. 주로 황제나 왕의 이름을 휘(諱)라 하는데, 그 이름과 동일한 글자나 글자는 달라도 발음이 같은 것은 백성이 사용할 수 없어 피해야 하는 법도이다.

이러한 ‘피휘’ 전통의 시작은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때부터라고 한다. 진시황(秦始皇) 혹  시황제(始皇帝)는 진나라에서 비로소 ‘황제’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붙여진 별명이다. 진시황의 본명 ‘영 정’은 ‘정사 정(政)자’를 쓴다. 이 때문에 1월 즉‘정월(政月)’은 정사 정(政)에서 ‘正月’로 바뀌었다. 

나라 이름도 그렇다. 원래 나라를 말할 때 ‘나라 방(邦)자’를 썼다. 하지만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의 방(邦)자 때문에 나라 이름에 국(國)자를 쓰게 된 것이다.  
당나라 시대에는 더욱 심했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 때문에 ‘관세음보살’은 ‘세(世)’를 뺀 ‘관음보살’로 줄었다. 심지어 글자는 다르지만 성씨 이(李)와 발음이 같은 잉어 이(鯉)를 쓰지 못하게 했고, 대신 적선공(赤鮮公 : 붉은 물고기님)이라는 존칭으로 바뀌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피휘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정적을 제거하는 사례도 빈번히 있었다. 소위  ‘필화 사건’ 혹은 ‘문자의 옥(文字-獄)’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일어난 피바람으로, 문서에 적힌 문자나 내용을 빌미삼아 황제나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왜곡해서 일족이나 일당을 멸하는 숙청의 한 방식이었다.

이런 정도니 자칫 황제의 이름을 잘못 썼다가는 멸문의 화를 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상 수백 명의 황제 이름을 피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여기에 성현들의 이름까지 피해야 했으니 백성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와 거꾸로 된 일도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關羽)는 중국인들이 숭배하는 대상으로 신(神)으로까지 추대된 이후, 후대 황제들은 자신의 이름이 관우와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피휘를 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땠을까? 우리나라 왕뿐만 아니라 중국의 피휘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이에 따라 고구려 연개소문은 천개소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 고조 이름 이연(李淵)을 피하기 위해 ‘연(淵) 씨’가 ‘천(泉) 씨’로 둔갑한 것이다. 경상도 대구의 한자는 원래 ‘大丘’였으나 공자의 이름 구(丘)와 같다 하여, 발음은 같지만 부수가 하나 더 붙은 글자로 바뀌어 ‘大邱’ 가 되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경복궁의 3개 문 가운데 하나가 ‘예(禮)를 널리 편다’는 의미에서 홍례문(弘禮門)이었지만 ‘흥례문(興禮門)’으로 바뀌었다.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 ‘홍력(弘歷)’의 홍(弘)자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외에도 글자 때문에 과거를 포기한다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 등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에게 ‘피휘’는 불편할 뿐만 아니라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왕들은 백성들을 위해 잘 사용하지 않는 희귀한 글자를 골라 쓰거나 아니면 글자를 한 자라도 줄이다보니 역대 왕들의 이름이 외자가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런 관습이 생겨난 이유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예(禮)에 어긋난다고 여겼던 한자 문화권의 인식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름 대신 자(字)나 호(號)와 같은 별명으로 부른다든지, 부모나 조상의 이름을 언급할 때 ‘홍길동’이라 하지 않고 ‘홍, 길 자(字), 동 자(字)’라고 조심해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그리스 문자
그리스 문자

코로나19의 또 다른 변이 오미크론(o: Omicron)이 우리를 다시 위협하고 있다. WHO는 코로나 변이가 나올 때마다 그리스 문자로 명명해 왔다. 그런데 알파(α)에서 시작해 12번째 글자 뮤(μ)까지 오다가 갑자기 15번째 오미크론(o)으로 건너뛰면서 여러 가지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13번째가 뉴(ν)인데 이는 영어의 ‘New’와 발음이 비슷해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로 오인할 수 있어서 피했다고 한다. 문제는 14번째 글자인 크시(ξ)다. 이는 영문으로 시(Xi)에 해당해 시진핑 주석의 성씨 시(Xi)와 같게 들려 자칫 시진핑 변이(Xi variant)로 인식될 것을 우려했다는 해명이다. WHO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중국 눈치를 보며 조치를 취했다는 비판도 있으니 어째 석연치 않아 보인다.

지난 2014년 시사 주간지 「타임」은 시진핑 주석을 표지 모델로 올리고 ‘시황제(習皇帝·Emperor Xi)’라는 제목을 단 적이 있다. 사정이야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이것도 피휘인 셈 아닐는지? 마침 같은 해 시진핑 주석의 이름을 잘못 읽어 해고당한 인도 앵커의 사연도 있다. 시진핑의 성씨 영문자 XI가 로마자로 11이다보니, 앵커가 ‘Eleven Jinping’으로 읽었다는 얘기. 피휘 아닌 피휘 닮은꼴이었다.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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