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 포스터
1936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 포스터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미 중부 캔자스 주 드넓은 평원 외딴집에 도로시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로시는 강한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강아지 토토와 함께 ‘오즈(Oz)’라는 마법의 나라로 날아갔다. 

이때 도로시의 집이 무너져 내리면서 ‘오즈’라는 나라의 나쁜 동쪽 마녀가 깔려 죽자, 착한 북쪽 마녀가 고맙다며 죽은 마녀가 신고 있던 은구두를 도로시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면서 마법사를 찾아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도로시는 마법사가 산다는 에메랄드 시(市)를 찾아가는 도중에 세 친구를 만난다. 뇌를 갖고 싶어하는 허수아비, 심장을 갖고 싶어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얻고 싶어하는 사자이다. 이들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지혜와 사랑, 용기로 함께 헤쳐나간다. 그들은 에메랄드 시에 도착해 마법사를 만나지만 나쁜 서쪽 마녀를 물리치기 전에는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

도로시 일행은 다시 여러 가지 위험들을 이겨내고 마녀를 없앤 다음 에메랄드 시로 돌아오지만, 이번에는 마법사 오즈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는 수 없이 이들은 또 다시 힘든 여정에 나서고 마침내 착한 남쪽 마녀를 찾게 된다. 

남쪽 마녀의 도움으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는 오즈에 남아 그곳을 다스리기로 하고, 도로시는 신고 있던 은색 구두 뒤축을 맞부딪치자 토토와 함께 캔자스 집으로 돌아온다. 1900년에 출판된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이야기다.

이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19세기 말 당시 미국사회의 경제 체제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1792년 달러를 공식 화폐로 채택한 이후 미국은 금(金)본위제, 은(銀)본위제 혹은 복(複)본위제 등 수많은 시행착오와 논란을 거친 끝에 1873년 금본위제를 도입하게 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보유량이 부족하여 화폐를 찍어내지 못하자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됨으로써 심각한 경제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상류층과 은본위제도를 지지하는 중산층 서민들 사이에 충돌이 생겼다. 이에 대해 「오즈의 마법사」는 서민을 위해 새로운 화폐제도, 금은 복본위제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았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서민을 대표하는 도로시가 신은 은색 구두는 은본위제도를 나타내고, 마법사를 만나기 위해 걸어간 노란(황금빛) 벽돌길은 금본위제도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오즈(Oz)라는 이름도 금(金)이나 은(銀)을 재는 단위인 온스의 약자 ‘oz’에서 따왔다.

또한 이들의 험난한 여정은 금본위제로 인해 혼란을 겪던 미국 사회, 에메랄드 성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그 빛은 화폐(Green Back)를 상징했으며, 에메랄드 성에 사는 마법사는 당시 무능한 공화당의 클리블랜드 대통령이었다.

비록 현실에선 금은 복본위제를 주장하던 민주당 후보가 부자 은행가들이 지지한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금본위제가 유지됐긴 했지만, 마법사(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도로시가 신었던 은색 구두(은본위제)에 있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마법의 신발이었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당나라 때 거리를 가리키는 행정구역을 행(行)이라 했다. 오늘날 그 흔적이 양행(洋行)이란 말에 남아 있다. 서양회사가 몰려 있는 거리라는 뜻이다. 또한 중국은 전통적으로 은본위제도를 채택했다. 그래서 은을 취급하는 점포가 많이 몰려 있는 거리를 은행(銀行)이라 불렀으니 이것이 오늘날 은행(Bank)으로 발전한 것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사랑 그리고 용기 등의 가치가 필요하며, 이것들은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이미 자신들 속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는 도로시가 회오리 바람에 의해 절망의 캔자스(Kansas)를 벗어나 용기를 잃지 않고 꿈을 찾아가는 노래 ‘무지개 너머(Over the Rainbow)’에 잘 나타나 있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 저 높은 곳에
한때 바람결에 들어본 그런 곳이 있죠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은 푸르고
당신이 꿈꾸는 꿈들이 이루어지는 곳’

그런데 역사와 삶은 순환되는 것이라 했던가! 코로나19로 힘든 이 시기의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서민들의 삶이 예전의 도로시와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도로시를 날려보냈던 회오리 바람, 토네이도가 지난해 12월 10일 켄터키 주를 비롯 중부 6개 주를 휩쓸었다.

4시간 동안 무려 400㎞를 이동하며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는 이 최악의 ‘괴물 토네이도’로 사망자도 100여 명에 육박하면서 가장 피해가 큰 켄터키 주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부디 도로시가 ‘집이 최고야’라며 은색 구두 뒤축을 부딪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듯이, 이번 토네이도 피해자들도 모쪼록 하루빨리 가족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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