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마스크(가면)를 쓴 존재"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19 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한 오페라 극장에선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리고 언제나 5번 박스석엔 괴신사가 자리한다. 그는 천상의 목소리를 타고 난 음악가이면서 마법 등 많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흉측한 얼굴 때문에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극장 지하 호수에 있는 미궁에 숨어 산다. 대중 앞에는 항상 반쪽 흰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그러던 중 그는 무명 여가수 크리스틴이 노래하는 음성을 접하면서 그녀의 사랑을 얻어낼 속셈으로 그녀의 꿈 속으로 찾아가 노래 레슨을 해주며 유혹한다. 그녀는 이를 하늘에 있는 아버지가 보낸 준 ‘음악의 천사(Angel of Music)’라 여긴다.

그런데 극장에서 오페라 리허설 도중에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주역 여가수가 출연을 거부하자 대역으로 나선 크리스틴이 노래를 완벽하게 부르고 공연은 성공리에 마치게 된다.  

어느날 괴신사는 그녀를 납치해 분장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미궁으로 데려가 헌신적인 사랑을 바치며 자기가 작곡한 오페라를 노래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면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괴신사의 가려진 얼굴을 보고 싶은 크리스틴에 의해 가면이 벗겨지고 흉측하게 일그러진 괴신사의 얼굴이 드러나자 그녀는 경악한다. 게다가 극장에서 계속 발생하는 사고에 두려움을 느낀 그녀에게 연인 라울이 사랑을 고백하며 지켜줄 것을 약속한다.

6개월이 지난 공연 날, 괴신사는 오페라 등장인물로 변신해 그녀를 납치해 지하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간다. 지하 미궁까지 뒤따라간 라울이 함정에 빠져 위험에 처하자 그녀는 그를 구하기 위해 괴신사에게 키스를 한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받은 인간의 따뜻한 정(情)에 충격을 받은 괴신사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풀어 준다. 그리고 태어나 부모조차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제일 처음 주었던 가면, 그 흰 가면만을 남겨두고 사라진다. ‘The Phantom of the Opera (오페라의 유령)’ 줄거리다.

 ‘가면’은 익명성 뒤에 실제 모습이나 욕망을 감춘다. 그래서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구스타프 융은 타인에게 보여 주는 자신의 모습(사회적 지위나 가치관 등 포함)을 가리켜 ‘페르소나(가면)’라고 지칭했다.

유령이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욕망과 태어나면서부터 그토록 목말라 했던 애정을 그녀를 통해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크리스틴은 유령의 분신이자 그의 페르소나였던 셈이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복고풍 의상 속 매력적인 괴신사의 나머지 얼굴을 보고 싶은 욕망과 드러난 실체에 대한 실망이 어디 크리스틴에게만 국한된 것이겠는가. 가려진 미지의 얼굴은 인간의 궁금증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취향대로 상상력을 동원하기 나름인데 어떤 결과를 낳을까?

마스크를 쓴 이성(異性)을 민얼굴일 때보다 더 매력적으로 본다는 영국 과학자의 실험이 최근에 나왔다. 연구진은 ‘과장을 일삼는 뇌의 작동 원리’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첫인상을 결정할 때 눈을 가장 먼저 본다고 한다. 더구나 요즘같은 때에는 마스크 때문에 상대방의 눈으로 시선이 더 집중하게 되고, 우리의 뇌는 마스크로 가려진 나머지 부분을 좋은 쪽으로 과대평가한다는 거다.

최근 ‘마기꾼 효과’라는 신조어도 나돈다. 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친 말로 마스크를 쓴 얼굴만 보다가 벗었을 때 예상과 달리 기대한 만큼 매력적이지 않아서 속은 느낌이 든다는 뜻이다. 일종의 ‘마스크 피싱(Mask Fishing)’인 것이다.
          
마스크는 이러한 심미적인 면만 아니라 심리적인 것에도 작용한다. 표정이나 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아 스스로를 방어하는 수단이 되고 스트레스를 줄여 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을 감춘다든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데서 오는 소통 부족이나 마스크가 없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현상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마스크를 쓰겠다는 응답이 70~80%가 넘는다는 조사도 있으니 마스크는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이유야 어쨌든 가면에는 변신의 속성이 있음을 상기하고 싶다. 가면을 쓰면 그 가면의 인물이 된다는 뜻이다. 단지 괴신사 유령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다양한 가면을 쓰고 자신의 본성을 그대로 노출하지 않고 나름 저마다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이는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마스크(가면)를 쓴 존재였다는 얘기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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