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의 리더를 자칭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과 모범을 보이는 것이 우선"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는 불과 3대 만에 무너지고 초한전(楚漢戰) 끝에 유방이 한(漢)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후한(後漢) 말년에 이르러 외척과 대립한 환관들의 ‘십상시의 난(十常侍亂)’과 황건적의 난으로 어지러운 틈을 타 전국에서 일어난 군웅들의 패권 다툼이 세 나라, 손권의 오(吳)나라, 유비의 촉(蜀)나라 그리고 조조의 위(魏)나라로 정립되었다. 

그러다가 유비, 손권, 조조가 사망함으로써 사실상 천하 삼분의 삼국 천하 쟁패는 막을 내렸다. 이후 위나라는 조조의 책사였던 사마의(司馬懿) 가문으로 넘어가 잠시 천하가 통일되는 듯하더니 5호16국을 거쳐 위진 남북조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때 북조의 북주(北周)에 독고신이라는 승상에게 딸이 일곱 있었는데 그중 장녀가 북주 명제의 황후가 되고 막내딸은 혼란의 시대를 마감하고 재통일하고 수(隋)나라를 세운 양견의 황후가 되었다. 넷째딸도 후에 수나라의 뒤를 잇는 당(唐)나라 고조 이연을 낳았다. 이로써 독고신의 세 딸이 황후가 되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남겼다. 

막내딸의 남편 양견은 581년 남북조 시대를 종결하고 대륙을 통일해 수나라를 세워 300년 전의 한나라 이후 최강의 부국으로 키웠다. 하지만 그의 간특한 둘째 아들이 사치와 향략, 특히 여색을 싫어하는 모후인 독고 황후(세 딸 중 막내딸을 흔히 독고 황후라 칭한다)의 성품을 잘 알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거짓과 위선으로 겸허하고 검소한 척 속여 태자인 형을 폐위하더니 독고 황후가 죽자 본색을 드러내어 아버지 문제까지 살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수양제다. 
    
그는 천하제일의 지배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정복 전쟁으로 이민족들을 무릎 꿇리고 대규모 국가사업이나 화려한 궁정을 짓는 등 제2의 진시황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굽히지 않는 고구려 원정을 3차례나 단행하다가 참패해 나라를 거덜 내고 결국 반란군에 의해 죽음으로써 개국 37년 만에 패망하고 말았다. 거짓과 기만 그리고 지나친 과시의 처세술로 파국을 초래한 셈이었다.

이후 독고 신의 외손자 이연이 수나라를 멸하고 개국한 당나라는 태종 이세민으로 이어져 국력이 강성하고 경제적으로 번영한 ‘정관(貞觀)의 치(治)’로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활발한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며 그 위용과 세력을 널리 떨쳤다.

하지만 당나라의 무역은 주로 교역국들을 속국으로 삼아 받는 조공 형식이었다. 돌궐은 물론 멀리 페르시아와 안남(베트남), 일본 등 이웃 나라들이 사절단을 파견해 당나라 황실에 조공을 바치는 소위 ‘만방래조(萬邦來朝)’가 현종 때 70여 개국에 달한 것으로도 당나라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신화사통신
사진 출처 - 신화사통신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여러 스포츠의 편파 판정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 주석이 마련한 해외 정상급 인사들과의 연회 식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식탁에는 시 주석 부부와 측근 인사들이 한편에 나란히 앉고 외빈들은 맞은편에 자리했는데 이를 두고 ‘당나라 시절 주변국의 조공 행렬인 만방래조를 구현한 것’ 이라며 상대 외빈들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는 구도란 해석이 나와서이다.

게다가 직사각형의 거대한 식탁 위 가운데를 가로질러 푸른색 물이 용(龍)의 형상으로 구불구불 흐르는 장식을 두고 중화주의가 반영된 것이란 비판도 나왔다. 중국에서 용은 황제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황제연회’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거다.

중국은 영국과의 아편 전쟁으로 청나라가 몰락한 후 오랜 세월 절치부심 속에 지내왔다. 그러다가 등소평에 이르러 어느 정도 경제가 나아지고 국력이 회복되어서도 이를 ‘드러내지 말고 은밀히 힘을 기르라’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100년간 지속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은 시 주석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전랑외교(戰狼)’, 즉 ‘늑대 전사’ 같은 이미지로 이웃 국가들에 고압적이고 윽박지르는 무모함도 서슴지 않으면서 미국과 함께 G2로 군림하는 것을 넘어 천하를 통치하겠다는 속내를 보이는 듯하다.

마치 진시황처럼 시황제라 불리며 수양제의 위세와 과시를 내세워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위엄을 떨치려는 야망이 엿보이는 행태이다. 하지만 진정 대국의 리더를 자칭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과 모범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는지. 하지만 조공질서 의식의 중국몽에 취해 있는 한 이러한 꿈 깨기는 어려울 것이다.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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