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2014년, 18세 소녀가 아일랜드에 입국하기 전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며 낙태 수술을 요청했으나 거부 당하자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보건 당국은 25주 차에 반강제로 제왕절개 수술을 명령해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를 보호 기관에 넘겼다.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로 100년 넘게 낙태와 이혼을 금지해오고 있던 아일랜드는 유엔 인권이사회나 유럽인권재판소로부터 법안 개정을 요청받기도 했다.

이에 낙태 합법화에 대한 국민투표를 3차례(1983, 1992, 2002) 치렀지만 모두 반대했다. 이 때문에 낙태를 원하는 많은 여성들은 수술을 받기 위해 영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로 나가야만 했다.

그러다가 2012년 낙태 거부로 중절 수술을 못 해 패혈증으로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31세 여성이 임신 17주째 심한 복통을 호소하면서 한 대학 병원을 찾았으나, 불법이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했다가 일주일 후 태아가 유산되고 나서야 수술을 했으나 패혈증이 악화해 사망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낙태 합법화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산모가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낙태가 결국 2018년 국민투표에서 전면 합법화됐다.
 
세계 어느 나라든 낙태는 항상 논쟁의 중심에 서있다. 칠레 등 가톨릭 성향이 강한 국가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빼면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에 독일과 프랑스는 임신 12주, 스웨덴은 임신 18주 내에는 무조건 낙태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3년 획기적인 전기를 맞았다. 연방 대법원이 낙태 권리를 수정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 권리로 해석하면서다. 이른바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사건’이다. 성폭행으로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노마 매코비(Norma McCorvey)라는 여성이 낙태 수술을 거부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신변 보호를 이유로 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과 담당 검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의 이름을 따서 ‘로 대 웨이드’로 불린 거다.

이 케이스에서 여성이 임신 후 6개월까지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했다. 임신 3개월 이전에는 낙태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가 여성에게 있으며, 임신 4개월이 넘으면 여성의 건강을 위해 낙태하지 못하도록 주 정부가 규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임신 7개월부터는 자궁 밖에서도 생명체로 존중될 수 있는 기간으로 인정해 낙태를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논쟁이 컸던 대법원의 판례로 지난 50여 년간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해 온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여담이지만 이 판결의 주인공 매코비는 후에 낙태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그런데 이 판결이 곧 폐기될 위기에 처하자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히고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처음부터 완전히 잘못’이라는 내용의 대법원의 의견서가 이달 초 유출되면서다.

대법원장이 ‘최종 결정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작부터 잘못된 판결이라고 한 결정이 바뀌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조짐은 이미 예고되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을 지명했을 때 가장 관심을 모은 것도 이 판결의 번복 여부였다. (임기 중 보수성향 대법관 3명을 임명하며 대법원의 균형이 보수 6, 진보 3으로 되었다.)

만약 이번에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번복이 되면 이를 유지할지 아니면 폐기할지는 각 주(州)의 결정에 맡겨진다. 50개 주 가운데 최소 26개 주는 즉시 낙태 금지를 강화하는 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는 언론 보도와 함께 이를 넘어 피임 또한 금지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점점 보수화되는 대법원과 달리 여론은 낙태 허용을 지지하는 쪽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는 답변이 28%인 데 반해,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은 58%였다.

낙태는 미국의 보수와 진보가 가장 치열하게 맞붙어 온 논쟁거리다.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이에 맞서 온몸에 ‘당신 것이 아니다(not your body)’라고 써 붙인 여성과 낙태 찬성론자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설 준비를 하는 가운데 여성운동의 대모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다. 낙태 금지는 독재적 시스템으로 가는 첫 단계”라고 비판하고 있다.

임산부의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프로 초이스(Pro-choice)’와 태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프로 라이프(Pro-life)’의 다툼은 올가을 중간 선거, 차기 대통령 선거는 물론 더 나아가 먼 미래까지 지속적인 이슈가 될 것이다.

이는 철학적, 윤리적 논쟁인 동시에 현실적 고민이 따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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