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심각한 가뭄의 지표, 헝거 스톤 (Hunger stone)"

체코, 엘베강의 헝거 스톤
체코, 엘베강의 헝거 스톤(사진 출처-위키피디아)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인류 문명은 물이 있는 곳에서 출발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나일강, 인더스강 그리고 황하강 4대 문명이 모두 강의 풍부한 물과 비옥한 땅에서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물에서 시작한 4대 문명 대부분은 물 부족의 가뭄 때문에 몰락하기도 했다. 가뭄은 기근보다 더 혹독하다.

그래서 일찍이 조선 실학자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청나라 기행문집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무릇 목마른 고통은 배고픈 고통보다 심하다’라고 했던 거다. 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려 주는 말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 덮친 미국 중서부는 가뭄과 모래폭풍으로 온 하늘이 먼지로 가득했다. 먼지 폭풍이 오면 밖에 있던 사람들은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와야 했지만 집안 역시 구석구석 먼지로 뒤덮여 말이 아니었고,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았으며 뜨거운 공기에 작물은 타들어갔고 가축들은 먼지에 목이 막힐 정도였다. 그야말로 ‘먼지 지옥’이었다.

결국 캔자스, 텍사스, 오클라호마 등으로 이어지는 대평원 지역은 초토화되고 ‘더스트 보울'(Dust Bowl)이라 불렸다. 이 시기 농민의 절망적인 삶을 ‘존 스타인벡(John E. Steinbeck)’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오클라호마의 톰 조드 일가를 통해 소설 『분노의 포도』에 잘 그려냈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서부로부터 유혹의 소식이 날아든다. 살기 좋은 이곳으로 오라고. 결국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지역을 떠나 66번 하이웨이를 따라 찾아온 캘리포니아는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악덕 농장주들은 일자리를 찾아 몰려온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주자들은 ‘분노의 포도’를 삼켜야 했던 거다.

현재 지구촌이 폭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캘리포니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0년 시작된 가뭄이 20년 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0년간 최악의 가뭄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물 부족 사태로 강제절수령까지 내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도 그럴것이 주민 2천만 명의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네바다주 미드 호수도 극심한 가뭄으로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이렇듯 폭염과 가뭄으로 곳곳에서 강과 저수지가 바짝 메마르자 오랜 시간 물밑에 숨겨져 있던 고대 유적과 과거의 흔적들까지 그 모습을 속속 드러내고 있다.

가깝게는 유럽의 다뉴브강 바닥에서 제2차 세계대전때 사용되었된 독일 군함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멀리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에서 3,400년 전 ‘자키쿠(Zakhiku)’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스페인의 한 저수지 바닥에선 5,000년 전 고인돌 거석 수백 개가, 이탈리아 포강 속에선 고대 마을 유적이, 로마 티베르강에선 네로 황제가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리 유적, 그리고 중국에선 600여 년 전 명나라나 청나라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여러 개가 양쯔강 바닥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강이 마를 때 강바닥 돌에 연도와 이름을 새겨 넣은 ‘기근석(饑饉石)’이란 게 있다. ‘배고픔의 돌’ 혹은 ‘슬픔의 돌’이란 의미의 이 돌들은 가뭄으로 강 수위가 낮아지면 모습을 드러나게해 그 해의 기후 변화를 경고하는 일종의 심각한 가뭄의 지표로 삼는 ‘헝거 스톤 (Hunger stone)’이다.

최근 유럽에서 가뭄으로 이 헝거 스톤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중 독일과 체코 사이 엘베강에 1616년에 만들어진 가장 유명한 헝거 스톤에는 ‘내가 보이면 울어라’라고 새겨져 있다. 이 모두가 환경오염으로 초래된 이상적인 기후변화의 결과이다.

그러하니 ‘내가 보이면 울어라’라고 섬뜩하게 경고하는 헝거 스톤을 보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무슨 일들을 저질러 왔는지 또한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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