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고대 이집트인은 시신이 원형대로 보존되면 다시 영혼을 불러들여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집트인 묘지에서 미라(Mummy)가 많이 발견되는 이유이다. 미라를 매장할 때 함께 넣는 것이 있는데, 죽은 자 즉, ‘사자(死者) 의 서(書)’라고 불리는 두루마리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과 영혼이 분리된 후 영혼이 잠시 저승으로 가서 육신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 아니면 못 돌아오고 영원한 죽음으로 갈지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지상에 남은 미라를 온전하게 보존하면서 심판을 받으러 저승으로 가는 영혼을 위한 주술, 서약, 기도문 등을 써놓은 일종의 사후 세계 안내서가 ‘사자의 서’인 것이다. 

이 안내서를 보면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저승에서 시신 방부 처리 즉 미라를 관장하는 신(神)의 손을 잡고 안내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미라는 영원한 여행길에 오른다. 부활과 영생을 바라면서. 
이렇듯 미라를 비롯해 사람이 죽은 후 장례를 마치고 내세(來世)를 향한 시신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장묘 문화는 각 지역과 시기, 종교별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예들 들면, 자연장, 풍장(風葬), 조장(鳥葬), 수장(水葬), 납골장, 수목장, 매장, 화장(火葬) 등이 있다.

바이킹들은 전투 중에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불붙은 배에 태워 바다로 떠나보냈다. 체로키 인디언들은 강에 흘려보냈다. 수장(水葬)이다. 그런가 하면 티베트인들은 주로 새 먹이로 내어 놓는 조장(鳥葬)을 했다. 이는 망자의 넋이 새와 함께 하늘에 오른다는 믿음에서 가는 이에게 마지막으로 공덕을 쌓으려는 풍습이었다. 
 
이렇듯 장례법이 다르긴 하나 그 주를 이루는 건 매장과 화장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화장(火葬)에 대한 거부감이 컸지만 지금은 대세라고 한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대두된 장례의 또 다른 화두가 기후 변화 위기와 친환경론에 따른 이른바 ‘녹색 죽음’이라고 하는 장례, ‘퇴비장(葬)’이다. 

LA에서 장의사로 일하고 있는 케이틀린 도티는 죽음에 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를 마친 후 한동안 화장터 업체에서 일했다. 그리고 다른 문화권의 시신 처리 풍습을 알기 위해 여러 나라들을 돌며 경험한 색다른 장례 의식들을 통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획일화된 장례 문화에 문제를 제기하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녀가 쓴 기이한 여행기랄 수 있는 이 책 속에 수록된 많은 이야기들 중에는 시신들이 썩어 퇴비가 되는 사례도 있었는데 실제로 2019년 워싱턴 주가 시신을 퇴비화하는 방식을 합법화한 후 콜로라도 주, 오레곤 주, 버몬트 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지난 달 20일 마침내 캘리포니아 주도 인간 시신을 거름용 흙으로 만드는 퇴비장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명 ‘인간 퇴비화 매장(Human Composting Burial)’ 장례식으로 2027년부터 시행된다. 시신을 철제 용기에 담아 풀, 나무, 짚 등을 섞어 미생물이 자연 분해하도록 해서 퇴비용 흙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일부 종교계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반대해 왔으나 막지 못했다.

아무튼 이 방식은 폭염, 산불, 가뭄 등 기후가 갈수록 극한 환경으로 바뀌는 현실에서 방부 처리를 위해 화학 물질을 사용하거나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매장이나 화장에 따른 환경 오염을 최대한 줄일 수 있어 친환경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방법을 선택할 권리는 고인과 유족에게 있고 퇴비용 흙을 공공 토지에 기부하거나 돌려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새의 먹이로 내놓는 ‘조장’이 자연계의 선순환에 가장 가까운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건 본능적인 거부감과 혐오 때문인 것에 비추어 볼 때 퇴비장에 대한 반감도 이에 못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성공회 추도문에는 ‘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먼지로’라는 문구가 있고 성서에서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세기 3:19)라고 했다. 시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담았던 아름다운 그릇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며 어떻게 자연으로 순환하길 바라는지 깊은 상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단지 육신의 선순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생을 마치는 날 창조주가 기뻐하시는 모습의 영혼을 갖고 오라고 하신 말씀에 따르기 위해 얼마나 천상의 양식을 목마르게 찾으려고 애썼는가에 따른 죽음과 부활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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