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다이달로스는 조카를 벼랑으로 떨어뜨려 죽인 혐의로 아테네에서 추방되자 크레타로 가서 미노스 왕에게 몸을 의탁했다. 어느 날 그는 미노스 왕의 명으로 왕비와 흰 황소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수의 괴물을 가두어 처치하기 위해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Labyrinth)를 만들어 주었다.

얼마 후 왕과 불화가 생긴 그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오히려 그 미로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바다로는 탈출이 불가능하고 오직 하늘만이 유일한 탈출로였다. 그는 공중에서 날아든 새들의 깃털을 모아 뼈대에 밀랍을 붙여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같이 하늘로 날아올라 무사히 탈출했다.

그러나 아들은 너무 낮게 나르면 바닷물에 날개가 젖고 너무 높이 나르면 태양에 밀랍이 녹는다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고 너무 도취한 나머지 날개의 위력을 과신하여 태양에 너무 가까이 높이 날아 올라가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 날개는 떨어져 나가고 바다로 추락했다. 과욕의 결과였다.

이 ‘이카로스의 신화’에 따라다니는 이야기가 용이 눈물을 흘린다는 ‘항룡유회(亢龍有悔)’다. 주역에 잠룡(潛龍), 현룡(見龍), 비룡(飛龍), 항룡(亢龍) 네 가지의 용이 나온다. 잠룡은 물에 잠겨 있는 용으로 마치 어머니 배 속에 있는 아이와 같다. 아이가 태어나 세상에 나와 눈이 보이기 시작하게 되면 현룡이 된다.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시기이므로 덕을 쌓고 처신을 잘해야 할 때다. 그리고 때가 되어 날아오르면 비룡이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진짜 용으로 입신양명을 이룬 때다.

하지만 그러다가 과욕으로 너무 지나치게 높게 올라가면 추락하고 후회하게 되는데, 이것이 항룡이다. 이는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기에 자만과 교만이 넘쳐 지난날을 잊고 나태해지다가 주위의 모든 이가 곁을 떠나게 되면 그때야 용은 눈물을 흘리며 뒤늦은 후회를 한다는 얘기다. 이른바 ‘용의 눈물’이다.

공자는 “용은 덕(德)을 가졌으되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 영험한 능력을 꼭 발휘할 때만 나타낸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권세와 이익을 추구하느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올라 모두 다 가졌으면서도 하나를 더 가지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과오의 결과다.

어쨌거나 동양에서 용은 최고 권위를 지닌 존재, 곧 왕을 상징한다. 해서 왕의 얼굴은 용안, 왕의 옷은 용포, 왕의 의자는 용좌라 했고, 왕의 눈물은 용루라고 불렀다. 반면에 일반에겐 물의 신(神)이자 풍요의 신(神)이다. 

그리고 거센 물살을 헤치고 용문(龍門)에 오른 잉어가 용(龍)이 되었다는 ‘등용문’ 고사에서 비롯돼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의 길에 나서는 것을 일컫게 되었다.

허니 그것을 꿈꾸는 자(者), 앞서 비상과 추락의 양면을 기억하고 ‘적절함과 겸손’만이 끝없이 높이 오르려는 욕망을 자제하고 더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게 되는 길임을 알아야 할 터.

2024년 갑진년(甲辰年), 용의 해가 밝았다. 새로운 각오로 나의 용(龍)을 그려보자. 자신감을 갖고 힘차게 살아 꿈틀거리는 그런 용을. 다만 겸허하고 빈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충실히 지내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어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완성하는 그런 여유와 절제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May let our Lord’s face shine on you!

* 편집자 주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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