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4년 소련의 타이푼급 신형 전략 미사일 핵잠수함인 ‘붉은 10월 호(Red October)’가 첫 항해를 시작했다. 허나 이 항해는 소련에 환멸을 느낀 해군 최고의 잠수함장 마틴 라미우스(Marin Ramius) 대령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치밀하게 세운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얼마 후 이를 알아챈 소련 당국은 붉은 10월호를 격침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보내고 어뢰 공격을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소련은 정부에 반기를 든 미친 함장이 미국에 핵 공격을 하려는 것이라고 거짓말로 알리면서 격침하라고 주문한다.

헌데 이 잠수함에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비밀 장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정보가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무소음(無騷音) 신기술이었다. 이 때문에 추적이 힘든 상황에서 미국은 어렵게 이를 간신히 극복한 후 ‘붉은 10월호’의 의도가 망명하려는 것임을 알아채고는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구출한다. 이 이야기는 1975년에 있었던 구축함 ‘스토로제보이 호’의 실화가 배경이다.

헌데 ‘붉은 10월호’ 구출 작전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라미우스 대령을 대신해 이 잠수함을 잠시 지휘하던 미 해군 핵잠수함 함장은 소련의 어뢰 공격 위기의 순간에서 이런 말을 내뱉는다. “치킨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언제 발을 빼느냐는 거지.”

여기서 ‘치킨 게임(Game of Chicken)’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놀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자동차를 마주 달리다가 충돌하기 직전 먼저 겁을 먹고 운전대를 꺾는 사람이 치킨, 즉 ‘겁쟁이’가 되는 게임이다. 제임스 딘이 나왔던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는 두 자동차가 나란히 벼랑 끝을 향해 질주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치킨 게임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상대방을 꺾었다는 자부심밖에 없이 그 리스크가 너무 크다.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둘 다 승자가 되겠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중상 아니면 사망으로 자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건너온 다리 불태우기’라든가 혹은 ‘최후의 통첩’ 같은 게임도 있지만,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 이론이 유명하다.

이는 두 사람이 협력하면 모두에게 최선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선택으로 결국에는 둘 다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이다. 협력으로 양측의 이익을 모두 증가시킬 수 있지만, 서로 욕심과 불신에 빠지면 둘 다 망한다는 얘기다. 전자의 경우 ‘넌 제로섬 게임(Non Zero-sum game)’이라고도 불린다.

아무튼 개인 간의 치킨 게임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기업 간이나 단체 간, 혹은 국가 간 등의 치킨 게임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헌데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정부의 의료 개혁 시도와 전공의들의 파업, 의정(醫政) 간의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사생결단식 대립이 치킨게임을 연상케 한다.

돌이켜 봐 미 핵잠수함 함장의 “치킨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언제 발을 빼느냐는 거지”라는 말처럼 아차 늦으면 공멸할지도 모르는 마지막 위기 순간으로 내몰리는 위험을 자초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순간. 반면에 죄수의 딜레마에서처럼 대립과 협력으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넌 제로섬 게임으로 가는 선택의 여지.

모쪼록 이번 의료 사태가 언제보다는 어떻게 발을 빼느냐로 조속히 공동의 선으로 가는 길이 찾아졌으면 한다. 그것이 모든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자 도리이여서이다.

* 편집자 주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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