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우, 부부 싸움을 많이 하는 때가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 6월에서 8월이라는 통계가 있다. 부부 싸움 때문에 119 구급차를 이용한 경우를 시기별로 정리한 것인데 지금 바로 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부부 싸움뿐이랴! 더운 날씨로 인해 소위 머리 뚜껑 열리는 일이 많아지고, 말 싸움을 넘어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일까지 생긴다. 몸은 그나마 치료하면 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두고두고 남는다. 분노 조절에 대한 책을 읽는다! 교육이나 상담을 받는다! 여러 가지 노력하는데도 폭발적인 분노가 계속되는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 안에 바로 그 헐크 바이러스가 있는 것은 아닌지? 영화를 통해 돌아본다.   

Hulk는 60년대의 만화, 인기 TV 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와 애니메이션, 2000년대의 영화로 오랜 기간 우리에게 친숙한 내용이다.  영화 Hulk(2003년)에 이어, 5년만에 Incredible Hulk(2008)가 제작되었는데, 앞서 말한 부부 싸움으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 여름, 그것도 6월에 개봉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사실 여름 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겨냥한 오락물이기 때문이리라.)
영화 전편과 후편의 등장 인물 설정이 유사하다. 군사용으로 헐크를 개발하는 장군이 나오고, 그 딸이 헐크의 애인이 된다. 차이점은 전편에서는 헐크의 아버지가 헐크를 개발하는 과학자로 나오지만 후편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내용상으로는 후편에서 화난 헐크의 모습이 오락물 정도로 느껴진다. 실험을 통해 변한 자신을 개인적으로 고뇌하는 모습이 전편에 비해 덜 그려졌기 때문이다.

후편 영화의 첫 부분은 화가 나거나 흥분하면 녹색 헐크로 변하는 자신을 감당할 수 없어 주인공이 멀리 브라질에 숨어 있다. 한편, 자신의 피를 이용해 군사용으로 더 많이 복제하려는 미군을 피해 숨어있는 것이고, 자신을 치료할 수 있도록 어느 연구자와 컴퓨터 메신저로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다. 높은 산 언덕에 많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참 이국적이다.
그러나 평화는 잠시, 미군들이 브라질까지 찾아와 집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서 쫓고 쫓기는 장면이 압권이다. 영화의 핵심은 아니지만 작전 요원들이 화난 헐크를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모습이 액션물로는 제격이다. 흔히 뉴욕 도심을 배경으로 한 액션 장면에 익숙한데 생소한 브라질에서의 추격전 장면이 없었더라면, 그 다음에 나오는 컴퓨터 그래픽 장면이며 액션, 판타지가 진부해 혹평을 받을 뻔했다. 

주인공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애인을 찾아가는데 아! 새 남자가 옆에 있을 줄이야! 우리의 헐크가 이때는 다행히 화를 잘 참는다. 애인이 다시 헐크를 만나는 설정은 빈약하지만 사랑한다는데 어쩌랴! 미군은 다시 헐크를 찾아내고, 버지니아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총과 포는 물론이고 엄청난 물량 작전으로 공격하지만 화난 헐크를 감당할 수는 없다. 오히려 폭발로 애인이 죽을 뻔하자 그녀를 잘 감싸서 보호한 후, 미군에 화났다!는 시위를 하고 애인을 안은 채 사라진다.

이제 주인공은 애인과 함께 뉴욕으로 달려간다. 컴퓨터로만 연락을 취해온, 자신을 치료하는 연구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낸 것이다. 실험 도중 다시 한 번 헐크로 변신하지만 애인의 진정시키는 노력으로 실험은 성공한다. 미군이 쫓아왔지만 주인공은 보통 사람일 뿐 더 이상 헐크가 아니다. 주인공을 헬기에 태우고 철수하기에 영화가 싱겁게 끝난다 싶었는데 반전이 시작된다. 뉴욕 도심에 또 다른 헐크가 나타나 차를 부수고 야단난 것이다. 작전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한 장군은 바로 옆에 과거의 헐크가 앉아 있기에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군대에선 군사용으로 또 다른 헐크를 실험하고 있었다. 실험 대상자가 주인공을 치료한 연구자로 하여금 자신의 몸에 처음 헐크의 피를 넣게 한 것이다. 원래의 헐크는 정상으로 돌아갔는데 또 다른 헐크가 나타났으니 영화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 다음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영화 중 몇몇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한다. 뉴욕에 도착한 주인공과 애인은 검문을 피하려고 택시를 이용하는데 운전사가 과속에 끼어들기 등 난폭하게 운전한다. 언제나 다정스러워 보이던 애인, 즉 헐크가 택시기사와 욕설을 주고 받으며 한바탕하다가 “너 분노 조절이 필요해!’라고 소리친다. “사돈 남 말 하시네!”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면이다.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태 7:4).

화난 헐크는 누구도 못 말리는데 여러 번이나 딱 한 사람이 헐크를 달랜다. 바로 헐크의 애인이다! “Calm down! Let the anger go! It’s not worth it!”하며 헐크를 달래는 애인의 연기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그 역할 만큼은 좋아 보인다. 화난 사람이 주위에 없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고, 화난 상대방을 사랑으로 품어 달래는 에너지가 내게 있으면 좋겠다.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잠언 27:9). 

사람들은 왜 화를 내는가? 화라는 감정 자체를 부정할 수 없지만, 왜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할까? 영화에선 주인공의 변신이 잘못된 실험이라는 외부적 요인 때문인 것으로 묘사된다. 선량한 사람 속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감마(gamma) 광선을 쬐어서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누가 22;3)와 같이 외부로부터 우리 마음 안에 무엇이 들어가서 잘못을 저지르고 화를 내는 것인가?

그럼 화를 내는 주체인 나는 원래 문제가 없고, 화를 내게 하는 상대방이 문제인가? 사실은 인류의 조상 가인 때부터 남에게 화내고 원망하는 버릇이 있지 않았던가? “...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창세기 4:5,6). 결국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할 주체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나 자신이 아닐까?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처음 만화로 시작한 헐크는 약자(여성, 흑인)를 보호하고, TV 시리즈는 정의를 위해 분노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반면, 영화에서는 군사용 실험으로 헐크가 만들어진다. 어떤 경우에 화가 나는가? 그나마 남을 위하거나 정의를 위한 의분이라도 있는가? 아니면 힘을 과시하고 남을 해치려고 화를 내는가? 더운 여름, 자칫 화를 내기 쉬운 계절에는 내 안의 헐크를 다스리며 살 일이다. 어쩔 수 없이 폭발할 때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내는 화를 줄이자. 필요한 화, 약자와 정의를 위한 폭발은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엉뚱하게 파괴하는 폭발은 정말 다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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