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싱 홈이나 노인 아파트에 가면 나이 드신 어른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 주시곤 한다. 잘 들어보면 한 분, 한 분 모두가 나누고 싶은 삶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계시다. 기쁘고 좋았던 이야기는 물론이고, 혹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이야기들도 일단 실타래가  풀리면 술술 나오는데, ‘모든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참 소중하구나! 버릴 것 없고 모든 이야기가 인생의 교훈이 되는구나!’하고 감탄하게 된다. 다만 듣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귀를 열지 않거나, “말이 안 된다! 시간이 없다!” 등의 이유로 진지하게 듣지 않아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지 못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이야기들을 놓치면 곤란한 일이다. 때로 하나님은 인간의 음성을 통해 그분의 역사를 전하신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은 영어 제목‘Curious Case’가 암시하듯이, 벤자민(Benjamin Button)이라는 주인공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점점 젊어진다. 그는 태어날 때 80세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나이가 젊어진다.
그런데 오늘 나누고자 하는 것은 주인공 벤자민의 기구한 삶 또는 그의 사랑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 할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병원에서 그녀의 딸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영화가 전개되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즉 딸이 귀를 열었을 때 어머니의 삶을 더 잘 알게 되고, 또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도 듣게 되는 것을 영화는 보여 준다.

TV 일기예보는 허리케인 경보를 계속 말하고, 병실 창문 밖에서 비바람이 치는 가운데 침대에 누워 있는 어머니는 딸에게 자신의 소지품에서 다이어리를 꺼내게 한다. 거기에는 사랑하던 남편인 벤자민의 인생 기록들과 사진들 그리고 결혼 전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벤자민이 보낸 엽서들이 보관되어 있다.“엄마 이 이야기가 정말이야?”라면서 딸이 내내 감탄하고 의아해하던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데이지(Daisy)가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꼬마 시절, 뉴 올리언즈의 너싱 홈에 계신 할머니를 방문했다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하지만 노인의 얼굴과 몸을 지닌, 말 그대로 애늙은이 모습의 벤자민(Benjamin)을 만나면서 둘의 운명적인 사랑은 시작된다. 둘은 성장해서 데이지는 발레리나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벤자민은 선원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서로 떨어져 지낸다.

여차저차 우여곡절끝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꿈같은 사랑을 나눈다. 둘다 외모로는 인생의 최고인 젊은 시절을 그린 장면들은 멜로 영화처럼 보인다.
드디어 벤자민과 데이지는 사랑하는 딸을 낳지만, 둘이 함께 행복했던 순간, 둘의 인생 시기가 비슷했던 짧은 순간이 끝나간다. 벤자민은 자신이 더 젊어질 경우, 데이지가 딸과 벤자민 둘을 키울 수는 없다면서 떠나 버린다.

어느날 벤자민은 십대로 자란 딸과 중년이 된 데이지 앞에 한 번 더 나타난다.(다이어리를 읽으며 엄마의 설명을 듣던 딸은 이 부분에서 얼핏 기억이 난다고 한다. 모르고 살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이제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딸은 엄마의 인생 이야기를 듣던 중,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잠시 밖에 나가 담배를 꺼내물고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면서 몸만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도 사라지는데, 사랑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벤자민의 간절한 마음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그 뒤 데이지는 재혼하여 남편이 있는 중년의 여인이 되었는데, 벤자민은 20대 초반이 되었다. 더 젊게 분장한 미남 브래드 피트에 반한 데이지가 “나는 늙었고 벤자민, 너는 너무 젊어”라면서 둘의 사랑 나눔을 버거워할 때는 ‘이 무슨 기구한 인생인가?’ 싶다.

이제 영화는 벤자민이 십대 소년이 되어 데이지를 찾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벤자민이 길에 버려졌는데, 그의 소지품 속에 데이지의 연락처가 있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파리에서 사고를 당한 데이지를 벤자민이 찾아갔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의 경우가 되었다. 아뿔싸! 사랑스런 옛 연인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 미남 브래드 피트도 없다. 남편의 모습만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을 아느냐?” 라고 남자 아이가 말할 때에는 기구함의 연속이다 싶다.

시간은 또 흘러 할머니가 된 데이지는 아예 벤자민이 살고 있는 너싱 홈으로 입주한다. 그리고는 옛날 어릴 적 할머니가 데이지와 벤자민에게 읽어 준 그림책을 할머니 데이지가 꼬마 벤자민에게 읽어 준다. 그 그림책은 둘이 청년 시절을 함께 보내며 읽기도 했던 오래된 책이다. 벤자민은 더 어려지고 데이지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되는 장면이 나오고, 이제 병상에 누운 할머니가 편히 쉬는 것을 뒤로 하고 영화는 끝난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신명기 33:1).“…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 많아 늙었도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여호수아 23:1-3).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을 이끈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와 여호수아는 자신들의 죽음을 앞두고, 백성들을 축복하고 하나님 율법을 잘 따를 것을 당부한다. 또한 출애굽과 광야 생활에 대해 잘 모르는 후손들을 위해 그 동안 삶의 역정이 어떠하였는지를 다시 말해 준다.

모세와 여호수아같이 위대한 지도자의 삶, 이스라엘 민족의 삶 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 삶의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참으로 소중하다. 우리 한국 민족의 근세 역사 이야기도 하나하나 참으로 소중하다. 그러기에 삶을 먼저 사신 어른들, 특별히 연로하신 분들의 삶의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시간을 내어 귀를 열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오늘 영화보다 더 멋진 지혜가 담긴 이야기, 하나님이 인생 가운데 함께 하셨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