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sychology in Movies

미국에서는 해마다 대형 총기사고가 일어나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원인에 대해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때문이라는 주장과 함께 사고를 일으킨 사람의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 때문이라는 주장을 본다. 지난 11월 미국 텍사스 주의 군 기지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는 어이없게도 군인들의 정신 건강을 돌보는, 즉 카운셀링을 담당하는 군의관에 의해 일어났다. 아프간 전쟁에 다녀온 군인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order)를 치유하다가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는 정작 자신이 이라크에 가기 전에 문제를 일으켰으니 이건 ‘외상전 pretraumatic’장애라 해야 할까?
2009년 2월에 영화 ‘Seven Pounds’를 통해 자동차 사고와 관련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소개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전쟁과 관련하여 같은 주제를 다루어 보겠다.
 
한국은 최근에 아프간과 이라크에 비전투병을 파병했고, 오래 전인 7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에 전투병을 보내어 직접 참전한 적이 있다. 오늘 소개하는‘하얀 전쟁’(White Badge)은 우리 나라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던 베트남전 참전을 다룬 영화다.
90년대 초 이 영화 이후로 한국에서도 베트남전 관련 영화가 여럿 나왔는데, 첫 작품인 ‘하얀 전쟁’이 할리우드의 다른 전쟁 영화 못지 않게 잘 그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세계 평화, 자유 수호라는 그럴싸한 구호 뒤의 모습, 즉 전쟁이 개인들에게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다루었다. 바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모습들을 묘사한 영화로 미국의 베트남전  영화 중 하나인‘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를 연상케도 한다.
월남전에 참전했던‘한’은 언론인으로 전쟁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전쟁 이후 무기력하게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전쟁 후유증이었다. 어느 날 그에게 월남전 당시 함께 싸웠던‘변’의 전화가 걸려와 당시의 기억이 새로워진다. 그런데 전화로 대화를 나누다가 일방적으로 끊어 버리지를 않나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 ‘변’을 통해 ‘한’은 전쟁의 악몽 속으로 함께 빠져들고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베트남전 당시 한 병장, 변 일병으로 한 부대에서 지냈는데 두 사람 모두 전쟁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한’은 처음 베트콩을 죽였을 때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점차 야수가 되어간다. ‘변’은 너무 긴장해 바지에 볼일을 보지 않나 힘든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민간인을 죽이는 지휘관의 잔인함에 변기수의 상태가 이상하게 되고 내내 괴로운 모습을 보인다.

‘한’ 앞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변’은 전쟁 당시의 얘기를 하는데 죽은 동료, 살아 남은 동료를 구분 못하는 것이 뭔가 횡설수설하는 느낌이다. 그러더니 뭔가를 슬쩍 내놓는데 베트남에서 가져와 숨겨두었던 총이다. 다음 만남에서 그 사연을 듣게 된다. 월남에서 돌아온 후 누군가에게 계속 쫓기는 느낌이 들어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는 것이다. 또, 권총을 지니고 있다가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서, 이제 한 병장님을 만났으니 정리가 잘 되겠다고…

전쟁은 끝났건만 ‘변’은 아직도 변 일병의 모습으로 전쟁터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멀리 타국의 전쟁터를 떠나 현실의 삶으로 돌아왔건만, ‘변’은 헬리콥터 소리 안 듣겠다고 귀를 자르지 않나 데모 군중을 향해 발사된 최루탄 소리에 발작을 일으키기까지 하는 것이 아직도 전쟁 중에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앞서 ‘한’을 만나 권총을 주면서 이제 정리가 잘 되겠다고 한 말의 의미가 죽여달라는 것임이 드러난다.

한 병장과 변 일병이 속했던 부대는 한동안 땅 파고 참호만 만들며 무료하게 지내다가 적의 위치를 파악해 알리는 작전 임무를 맡았다. 큰 공격을 앞두고 베트공의 거점을 확인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그런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한’과 ‘변’이 속한 40여 명의 부대는 겨우 10명 남짓 살아남았다. ‘한’은 제대하고 한국으로 먼저 돌아왔는데,   다시 만난 ‘변’은 아직도 이곳이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혼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변’은 말한다. “한 병장님을 찾은 것은 나 대신 죽여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 역시 동료들을 뒤로 하고 살아남았다는 괴로움에 시달려온 한기주는 그 고통을 덜어주려는 듯 권총을 들어 변진수의 이마를 겨눈다.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잠언 14:10).

오래 전에 일어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후유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의 아프간, 이라크 전쟁이 가져다 주는 부정적 영향을 대비해 볼 수 있겠다.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여러 한인 2세들 또한 후유증을 앓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에서 본다. 인간의 말로 위로하기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한편, 사건 사고뿐 아니라 사람 모두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그렇지만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운 기억들에 갇혀 산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적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다. 신앙적으로는 죄가 우리를 더 이상 발목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죄를 안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거의 죄에서 벗어났으니 자유함을 얻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어두운 절망의 터널에서 벗어나 밝은 새해 맞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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