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무렵에 유독 돌아가시는 어른들이 많아지는 것을 본다. 교회의 어른들이며 지인의 어른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이다. 더욱이 멀리 한국에 계신 어른들이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놓쳤을 뿐 아니라 나갈 형편이 못되어 외롭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때가 되어 돌아가시는 자연사뿐 아니라 미국 버지니아 광산 폭발이나, 한국 천안함 침몰과 같이 사고로 인한 예기치 않은 죽음에 유족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슬퍼하는 소식도 들려온다.

또, 올해 초 아이티 지진을 시작으로 칠레의 쓰나미, 터키의 지진에다 중국에 또 다른 지진이 발생해서, 한두 명 혹은 수십 명이 죽은 것이 아니라 수백에서 수십만 생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간이 이러저러한 죽음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좀 무거운 주제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헨리 나우웬의 『죽음, 가장 큰 선물, Our Greatest Gift』(홍성사)을 골라보았다.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을 맞이한 분들에게 목회적 위로를 드리고자 죽음 또는 사별에 관해 읽어본 책들 가운데,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의 죽음에 대한 관점은 한 발 앞서 있다.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한 방법론이나 위로에 관한 책, 예를 들면 『사별의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노만 빈센트 필 지음, 한국기독교연구소)도 도움이 되었지만, 죽음을 ‘선물(Gift)'로 표현한 책 제목에서 보듯이 지은이는 죽음 자체의 의미에 초점을 더 많이 맞추고 있다.

“죽음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고 말하지도 않는 편이 더 나을 만큼 끔찍하고 터무니없는 일입니까? ... 우리의 죽음이 피하고는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 이상이 될 수 있을까요? ... 죽음과 조금씩 친밀해지며 죽음 앞에 마음을 열고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부모님이 우리의 출생을 준비할 때 기울이셨던 그 세심함으로 우리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프롤로그 죽음과 친해지기 13, 15쪽)

위에 열거된 여러 질문을 통해 죽음을 상실이나 아픔 이상의 것으로 보는 지은이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요즘 ‘죽음준비학교'라는 사역을 통해 죽음을 터부시하거나, 다루기 어렵고 피하고 싶은 주제로 여기는 것을 넘어서는 것과 연결되는 질문들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일과 죽어가는 이를 돌보는 일에 관한 묵상(A Meditation on Dying and Caring)'이란 부제에서 보듯이, 이 책은 크게 두 부분, 1부 죽음을 맞이하는 일, 2부 죽음에 처한 사람을 잘 돌보는 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 죽음을 잘 맞이하는 일지은이는 죽음을 준비하는 첫 번째 과제로 다시 어린 아이가 되라고 한다. 이‘제2의 유아기'는 새롭게 다른 이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사람에 대한 의존은 때때로 우리를 노예 상태로 이끌지만 하나님에 대한 의존은 자유로 이끈다”고 말한다(37쪽). 지은이는 교통 사고로 비장 파열이 일어나 수술을 받았던 경험을 들려 준다. 생존 여부가 불투명한 수술을 받고 침대 위에 단단히 묶여 있으면서, 자신이 잘 모르는 어느 의학팀의 기술에 의존하게 된 경험을 통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어떤 거대한 느낌, 곧 하나님의 어린 자녀가 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수술 후에 살게 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하나님의 품에 안전하게 옮겨져 틀림없이 살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죽음 그 자체를 넘어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안전하게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좋은 죽음은 사람들에게서 분리해내는 사건이나 슬프고 비통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결속, 일치를 가져온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어린 자녀인 인류는 모두 형제 자매이며 미래의 부모이기 때문에 죽음은 “인류 가족을 하나로 결속하는 은혜의 선물”이 된다고까지 말한다(46~49쪽).

우리가 자기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만 슬퍼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나 생면부지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조금이라도 도우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출생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쓴다(69쪽).

“죽음은 성공이나 생산성이나 명망의 종말일지는 모르지만, 열매의 종말은 아닌 것입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 삶의 열매는 우리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 열매를 보거나 경험하는 일은 드뭅니다. 우리는 자주 업적에만 몰입하기 때문에 삶의 열매를 볼 수 있는 시야를 갖지 못합니다”(65쪽).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 웅변적으로 위의 설명이 사실임을 보여 준다. 성공 없이 패배자처럼 죽으셨고, 따르던 사람들의 인기도 없어졌지만, 지금까지 예수님의 삶처럼 열매를 맺고 있는 삶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2부 : 죽음에 처한 사람을 잘 돌보는 일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흔히 특별한 훈련을 받은 호스피스(Hospice)나 직업적 전문가들이 해야 하는 일로 여기는 것을 지은이는 반대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모든 사람이 가진 특권으로서 인간 존재의 중심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혼자서 죽는 것이 좋지 않다”면서 임종의 순간에는 누군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 있던 마리아를 그 예로 든다. 마리아는 어떤 말이나 간청이나 외침보다 그곳에 있음으로써 ‘하나님이 예수님을 결코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는 마리아뿐 아니라 제자 요한이 있었다. 죽음에 처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 가족의 힘만으로 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그런데 공동체로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대해 지은이는 단순히 힘을 합하는 것을 넘어 “함께 돌보는 일의 신비는 그것이 공동체를 요구할 뿐 아니라 공동체를 창조하는 데 있습니다.”라고까지 말한다(97~99쪽).

즉, 죽음을 돌보던 이들은 죽음 이후에 전보다 서로 더 가까워지는 유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섬기던 장애인 공동체(Daybreak)에서 돌봄을 받은 이가 역설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나만 사랑해서는 안 되고, 여러분끼리도 사랑해야 해요.” (98쪽)

또한 아내와 네 살, 다섯 살배기 어린 두 자녀를 남겨두고 남편이 죽은 예를 소개한다. 이들 유가족은 5년이 지났어도 묘소 방문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유족이 용기를 내어 묘소를 방문했지만, 아빠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큰 아이는 무덤에 가는 일을 여전히 무서워해 동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성찬을 할 때 “나를 기념하라”하신 예를 통해 “이미 죽은 이들과 나의 연관성을 느끼며 그 연관성에서 흘러나오는 기쁨과 평화를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요!”(110~111쪽)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그저 분리, 이별이 아니고, 일치와 친교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되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 예로서 제시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를 기념하라”하신 것처럼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인간적으로 지나치게 그리워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친교를 계속하라고 말한다.결론 부분에 이르러 지은이는 죽음을 예수님의 부활과 연결한다. “부활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죽음과 죽음의 과정에 대해 쓰는 것은 마치 바람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항해에 대해 쓰는 것과 같습니다.”(148쪽)

그런데 부활의 의미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흔히들 “아무 걱정 말아요. 예수님처럼 당신도 부활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 이상이라 말한다. 육체의 고통이 사라지고 행복하게 살게 되는 부활처럼 죽음에 대한 문제를 풀어 주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표현으로 부활의 의미를 지은이는 전하고 있다. 돌아가신 분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져 갈 것이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 땅에 남아 죽음 이후의 외로움을 극복해야 한다. 특별히 그 분들을 공동체로 함께 섬기는 은혜가 있기를 기대한다. 또, 하나님 안에서 나 스스로 죽음과 친밀해지며, 잘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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