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요즘, 저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귀엽고 좋은지 모릅니다. 아마 손주들을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할머님들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손자 손녀들이 없습니다.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니고요. 큰 애가 이번 가을 학기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한참을 기다려야 손주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지난 5월에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의 한 교회에 부흥집회를 인도하러 갔다가 제게 식사를 대접해 주시던 안수집사님 가정에 입양된 아이를 보고, 입양 절차와 조건들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제 나이가 입양 부모로서의 제한을 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쉰을 넘긴 나이도 아닌데, 한국의 입양 단체인 경우에 입양을 원하는 부모의 나이가 만 45세를 넘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얼마 전부터 저희 집에 이제 갓 돌을 넘긴 한 아기가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웠으니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거나 말씀 연구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바로 제 무릎 위로 기어 올라와 제가 보는 책과 필기도구들을 뺏어들고 뭔가를 쓰고 그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아이가 쓰고 그리는 것은 글씨도 아니고 체계적인 그림도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그 녀석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제게 올 때마다 손에 넣으려고 애를 쓰는 한 권의 책이 있는데, 표지가 맑은 하늘과 푸른 산으로 된 책입니다. 제 근처에만 오면 제 손에 그 책이 있는지, 어느 탁자 위에 놓여 있는지 살핍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유독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책 갈피 안에 항상 펜이 끼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인지라,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메모하느라 항상 펜을 끼워두는데, 그 녀석이 바로 그 펜에 눈독을 들인 것입니다.

한 번은 제가 그 책을 감추어버렸습니다. 아니, 그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책을 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책을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한 아이가 뒤뚱거리며 달려 오더니 자기를 안아달라고 보챘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안기 위해 보던 책을 탁자 아래에 내려 놓는데, 바로 그 순간 아기는 탁자 밑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책과 펜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이는 제게 안기고 싶어 온 것이 아니라, 그 책에 관심이 있어서 저를 잠시 방편으로 삼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얼른 그 책을 다시 집어다가 책상 위,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그 순간 아이가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펜을 오랜만에 보았는데,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니 속이 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아이에게서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품이 그리워 하나님께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가 있어 하나님 앞에 가는 모습, 그리고 필요가 채워지면 하나님께 가는 것을 뒤로 미루려는 모습이 영락없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책을 아기에게 보여 주느냐 마느냐는 저에게 달려 있는데, 그 애는 저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필요가 채워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는 하나님께 있는데, 우리는 종종 필요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관심을 두기보다, 필요 그 자체에만 관심을 둘 때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필요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필요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관심을 두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필요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필요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최고의 관심을 두고 그분만으로 만족하고 그분만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때, 그 고백의 마지막 결론은 결국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9).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필요의 궁극적인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필요 그 자체보다, 필요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더 큰 관심과 사랑, 그리고 집중을 보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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