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26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A 아파트 23층 옥상에서 22층의 한 집으로 도둑이 침입을 시도했습니다. 옥상에서 밧줄을 밑으로 내린 후 그 밧줄을 타고 베란다로 잠입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들어가려던 집의 베란다 문이 잠겨 있는 바람에 도둑은 타고 내려왔던 밧줄을 잡고 다시 위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힘에 부쳐 올라가지를 못했습니다. 수십 분을 밧줄 하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도둑은 결국 119에 신고해 구조되었습니다. 경찰서로 잡혀 온 그는 초범이라며 정상참작을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너무 살기 힘들어 평소에 눈 여겨 봐둔 집을 털려다가 이같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도둑으로서 “처음 하는 일이라 이렇게 되었으니 봐 달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참 어이없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처음이라서 이해하고 눈감아 줘야 할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실컷 두들겨 패다가 처음 하는 일이라 자신이 오히려 맞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면 어떻게 될 것이며, 살인을 시도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실패했으니 봐달라고 한다면 그 또한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처음이어서 봐 줄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분명히 구분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구상유취(口尙乳臭)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에서 젖 냄새가 난다는 말입니다. 일을 막 시작한 초보나 일을 하기는 하는데 뭔가 모를 유치함이 가득한 사람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나쁜 뜻으로 보면 비웃음으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순수함이 담긴 뜻이기도 합니다. 세태에 물들지 않고 마음이 무디어져 있지 않는 순수함입니다. 비록 입에서 젖 냄새가 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라면, 오히려 좋은 쪽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둑질이나 강도, 살인과 같은 범죄 행위는 아무리 초보라도 결코 좋은 뜻으로 봐줄 수 없는 일이지만, 그와는 차원이 다른 일상의 일들은 초보자가 보여 주는 순수함이 있습니다. 비록 유치하게 보이거나 비웃음의 대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의 처음 모습을 되짚어 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성경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비록 유치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차라리 순수하다고 말씀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시 8:2).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이상의 세 구절들의 공통점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입니다. 하나님이 대적을 무찌르실 때, 자기 잘난 맛에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는, 세상 때 묻은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수하고 어린아이처럼 뭔가를 잘 모르는 사람,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의 비밀도 세상 지식으로 가득 차서 자기밖에 모르는, 세상 때로 가득한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마음이 순수한 사람의 눈에 하나님 나라가 보이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대와 사모함이 그들에게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더 많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깨끗하고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책,『하늘을 담는 사람』에 나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유치하게 보일지라도 차라리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아니면, 하늘의 지혜를 담기에 너무 많은 세상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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