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의 한 중직자에게 남 모르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흡연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같은 교회의 성도에게 흡연 현장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당황하는 그에게 교회 성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몇 주 후 그 교회에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3일간의 부흥회를 마친 어느 날, 그 성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000님, 지난번 부흥회 둘째날 저는 온몸 전체를 관통하는 뭔가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날부터 담배 냄새를 맡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담배를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000님이 가장 먼저 생각나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000님도 꼭 나와 같은 체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 중직자는 부끄러운 생각도 들고 기분도 나쁘고 해서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결국 밤을 새다시피 한 이 중직자는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금연을 위해 하나님께 작정기도를 하자.’
이 중직자는 힘들었지만 매일 하나님께 담배를 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작정기도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어떤 변화도 그에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담배를 잊을 수 없었고, 여전히 매일 한 갑 이상을 피웠습니다.

금연 문제 외에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왜 그 성도는 부흥회라는 단 한 번의 시간에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은혜를 받았고, 나는 며칠 동안 작정기도까지 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지? 내가 그보다 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중직인데 뭐가 문제지? 혹시 내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인가?’

이제 그에게는 금연 문제보다 신앙의 정체성 문제라는 혼란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어느날, 그의 마음에 세미하면서도 강력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와 그 성도의 차이는, 그는 담배를 피웠지만 담배를 사랑하지 않았고, 너는 담배를 피울 뿐만 아니라, 담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

깜짝 놀란 이 중직자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숨겨 두었던 담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꺼내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담배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을 더 사랑할 것이라는 고백을 눈물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담배는 보기도 싫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형태의 세상 습관들을 갖습니다. 신변잡기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과 가족들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이름으로, 또는 세상의 유흥과 관계된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라면,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사탄이 진열해 놓은 21세기형 선악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우리 앞에 진열해 놓는 선악과는 흡연이나 음주와 같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무형의 ‘뭔가’일 수도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영적인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을 붙들어 매어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뭔가’가 없습니까? 영적인 시각과 청각을 오직 하나님께만 고정하고 싶은데, 그것을 방해하는 ‘뭔가’는 없는지요? 혹시 그 ‘뭔가’가 신변잡기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가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마음 중심에 자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생각과 말로는 “하나님께만 향하기를 원합니다. 그 ‘뭔가’를 제게서 멀리 떨어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데, 실제로는 그 ‘뭔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탄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 선악과를 따먹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얼마나 우리의 삶 속에 실천하고 있느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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