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스커넥트(Disconnect)'
2012년 미국 스릴러 영화라고 분류되어 있다. 보통 스릴러하면 피를 구경하게 마련인데, 다행히 이 영화의 나름 폭력 장면에서 관객을 긴장시킬망정 피를 부르는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파국 직전의 슬픈 해피 엔딩이다. 다만 지나치게 짖궂은 청소년들이 태권도 수련장의 음료수 진열장에 소변 담은 병을 진열해 누군가 그걸 마시다 웩웩거리는 장면 정도는 참아야 한다.

이 영화는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헷갈린다. 노트북, 아이패드, 손전화기와 같은 현대 통신 기술이 우리네 삶에 드리운 음영을 해결하기보다 추적 고발하는 영화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SNS를 통한 소통에 매달리다 보면 현실에서의 인간 관계는 끊어져 버린다는 말씀이다. SNS 속에서 그리 친근해 보이던 누군가도 현실에선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아주 낯선 타인이게 마련이고, 기계를 쳐다보느라 외면하고 있던 주위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 역시 어느 날 고개 들면 낯선 타인으로 변해 있기 마련이라는 말씀이다.

이야기 하나,

 
니나는 여느 기자들처럼 특종감을 노리는 전도유망한 리포터이다. 우연히 인터넷 채팅을 통해 카일이란 청년을 알게 된다. 카일은 채팅 룸에서 옷을 벗고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인터넷으로 보여 주는 일을 해서 돈을 번다. 관음증과 노출증의 만남이다. 문신과 피어싱, 화장, 도발적인 의상으로 손님을 유혹하는 카일은 보스와 십대 동료들과 함께 집단 생활을 한다. 결재도 인터넷으로 한다. 실제로 성매매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역시 불법? 심증은 있되 물증은 없는 십대들의 성 관련 돈벌이 취재가 대박날 것을 예감한 니나는 카일을 밖으로 불러낸다. 카일은 돈을 주되 더러운 요구를 하지 않고, 만나서도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 니나에게 신선한 매력을 느낀다. 인간적인 믿음도 생겨난 듯하다. 니나의 요구에 기꺼이 익명의 제보자 역할도 자청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기사는 특종이다. 그런데 득달같이 FBI가 달려온다. 그들의 은둔처를 알아내란다. 특종 잡겠다고 인터넷 결재를 했으니 니나도 범죄자란다.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보스를 잡아야 한단다. 이미 어른들 세상의 이중성을 다 알아 버린 카일을 그곳에서 빼내는 일은 어렵다. 교회나 학교를 알아 보아 주겠다는 니나의 약속은 힘이 없다. 니나는 사실 카일과 사귄다거나 책임질 생각이 없었으니까.

 
결국 카일을 통해 주소를 알아내지만, 경찰이 급습하기 직전에 보스와 아이들은 도망친다. 제보한 카일이 위험에 처할까봐 도망간 곳까지 니나는 찾아가고 사태의 추이를 알아챈 보스는 니나에게 주먹을 날리는데, 카일이 그것을 막아 주고 보스의 뒤를 따른다. 마지막 카일의 대사가 슬프다. “보스는 우리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도 돈을 강제로 갈취하지도 않아. 수수료만 받고 우리를 보호해 준다고.”
그런데 넌? 너는 나를 지켜줄 수 있어? 내게 가정을 줄 수 있어? 정상적이라 말하는 세상, 그리고 법이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느냐는 카일의 질문이 아프다. 작은 선행에 만족하는 이기주의자임이 환하게 드러나 버린 니나는 한없이 울고 있다.

이야기 둘,
짓궂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두 남자아이와 음악 속에 묻혀 사는 외톨이가 두 번째 이야기의 십대 주인공들이다. 친구들과 시선도 잘 마주치지 않고 길다란 앞머리로 눈을 가린 외톨이 벤을 골탕 먹이려고 악동들이 모의를 해서 벤의 손전화기에 접속한다. 벤의 아버지는 첫번째 이야기에서 리포터인 니나가 일하던 TV 방송국의 법률 자문이다. 벤은 악동들의 작품인 보이지 않는 소녀 제시카 로니에게 관심을 보이고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소년은 제시카 로니의 것인 양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찍은 사진을 보낸다. 벤은 잠시 놀라지만, 그에 화답하는 걸 의리나 사랑이라 여겼는지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찍어서 화답한다.

그 다음 수순이야 안 봐도 훤하다. 짓궂은 청소년들은 그 사진을 학교의 아이들에게 죄다 띄우고, 킥킥거리는 아이들의 반응에 사이버폭력을 알아챈 벤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매 자살한다. 다행히 누나가 발견해 응급실로 실려 가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전에 벤의 가족들이 저녁 식사 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대화는 실종되고, 사이버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통신하기에 바쁜...

벤의 엄마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벤 곁을 지키자고 하지만, 아버지의 머릿속은 사건의 원인 규명에 쏠려 있다. 아들이 그렇게 된 원인을 집요하게 찾던 아버지는 드디어 쭈뼛거리며 문병 왔던 한 친구가 범인임을 알아채고 그의 집으로 달려간다. 악동 제이슨의 아버지는 사이버 형사이다. 아들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기다가 자살 동기를 부여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버럭 소릴 지르며 아들을 야단치지만,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증거를 인멸한다. 그러나 이미 벤의 아버지는 집 앞에 와있다. 두 아버지가 싸운다. 벤의 아버지는 분노로, 제이슨의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부둥켜안고 구르면서 싸운다. 제이슨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놀란다. 자식에게 냉정하고 사랑 없는 아버지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벤의 아버지가 필드하키 채를 휘두른다. 그런데 제이슨의 아버지가 아니라 제이슨의 팔에 맞는다. 두 아버지가 놀란다. 제이슨의 아버지가 달려가 아들을 껴안는다. 그 모습을 바라본 벤의 아버지가 휘청거리며 돌아선다. 병원으로 간 그는 아내와 딸을 껴안는다.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자책과 회한으로 가슴이 아프다.

이야기 셋
세 번째 이야기는 자식을 잃어버린 젊은 부부의 갈등이다. 아기의 죽음으로 상심한 남편 데렉은 아내와 시선을 마주치길 거부하고 밖으로만 떠돈다. 아내 신디 역시 그런 남편의 눈치만 살필 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신디는 상처 받은 이들끼리 만나는 인터넷 채팅 룸에서 익명의 남자에게 부부 갈등과 아기의 죽음 등을 털어놓는다. 상대도 부인이 암으로 죽었다며 신디를 위로한다. 데렉은 자주 출장을 가고 모텔에서 사이버 도박을 한다. 그런데 이들의 통장에서 큰 돈이 사라져 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경찰에 신고하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사이버 수사관에게 일을 맡긴다.(이 사이버 수사관은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악동 제이슨의 아버지다.) 남편의 월급으로 빠듯하게 살아가던 터라, 당장에 부부의 생활이 어려워진다. 주택 융자금을 갚지 못해 집을 차압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코너에 몰린 부부에게 사이버 형사가 용의자 물망에 오른 사람을 가르쳐 주는데, 그는 바로 아내와 채팅룸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다. 그의 실명은 스테판 슈마허. 데렉은 직접 사이버 도둑을 잡겠다고 그를 찾아간다. 집을 엿보고, 그가 일하는 세탁소에 들어가 은근히 시비를 걸고, 집안에 몰래 들어가 은행 계좌 서류들을 증거자료로 빼낸다. 돈을 받을 수 없다면 응징이라도 하겠다며 분노하고 있는 데렉에게 사이버 형사가 전화를 걸어온다.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라는 것이다.

허탈해져 버린 부부 앞에 스테판이 총을 들고 나타난다. 스테판은 부부가 자신을 스토킹한 것을 알고 있다며 그 이유를 추궁한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촉즉발의 순간에 아내 신디가 자신이 채팅룸의 친구라고 밝힌다. 스테판도 데렉도 신디도 긴장이 풀린 채 주저앉고 만다.

갈등의 해결을 피해 SNS로 숨고 익명의 누구에게 집착하던 결손 가정 출신의 주인공들 혹은 가족들이 대가가 엄청난 또 다른 갈등을 겪고서야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로 돌아오고 있다. disconnect에서 connect로. 오늘을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소재이고 주제이다. 영화가 해결 방법을 적나라하게 일러 주지는 않는다. 감동을 하기에는 주인공들이 겪은 상실이 너무 크다. 하기야 문제며 해결 방법까지 인터넷이 떠들고, 책이나 강연으로 판매하는 세상이니 더 무엇을 덧붙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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