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열정으로 찬양하며 기도하는 옆사람이 그립다. 본당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통로까지 꽉 채워 서로의 열정을 부추기던 부흥회나 수련회가 그립다. 이제 다시는 그런 집회를 경험할 수 없는 걸까? 이제는 본당이나 모임 장소에 드문드문 앉아 있는 모습이 일상이 되었고, 한 공간을 꽉 채운 모습은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의 실체가 무엇이었을까?이제는 그런 공간이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몇몇 교회의 온라인 예배에 수천 수만 명이 생방송으로 참여하는 것을 자주 본다.
김학천(수필가, 치과의사)누군가 했던 말처럼, 음악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고, 죽음 앞에서도 써야 하고, 감옥에서도 자유롭게 하는 것’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고 했나보다. 죽은 자를 위한 레퀴엠도 망자는 듣지 못하고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곡인 걸 보면 이 또한 카운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 모차르트는 ‘레퀴엠(진혼곡)’을 통해 ‘우리는 왜 죽어야 했는가?’라고 묻는다.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오케스트라 유럽순회단이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마침 적군의 지휘관은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음성을 발하지 못하고 엉뚱하고 잡다한 소리만 내고 있다면, 그 교회는 병 들었거나 이미 죽어버린 교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나오는 소리가 참으로 크고 요란하고 화려합니다. 신문지상에 이런저런 교회의 소리들이 넘쳐납니다. 특정 요일 교포 일간지 광고의 절반이 교회 광고라는 어느 통계를 본 일도 있습니다. 그 소리가 다 하나님의 목소리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목소리가 교회를 통해 크고 화려하게 세상을 뒤덮는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입니까? 그런데 교회
김학천(치과의사, 수필가)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남주인공 레트 버틀러, 그리고 멜라니와 애슐리. 비전통적이고 정열 넘치는 ‘스칼렛(Scarlett)’이라는 이름은 빛나는 ‘빨강(scarlet)’을 뜻하고, ‘레트’라는 이름도 ‘레드(Red)’를 연상케 한다. 스칼렛은 애슐리에게 이끌리지만, 단조로운 회색의 ‘애쉬(Ash)’를 연상케 하는 ‘애슐리’는 ‘검정(Melanin)’을 뜻하는 ‘멜라니’와 결혼한다.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바 헬러가 쓴 『색의 유혹』(원제: 색은 감정과 이성에 어떤
곽성환 목사(PMI 바울 선교원)가족간의 성범죄,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복 오빠가 여동생을 강제로 추행, 강간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원치 않는 관계를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직후에 모욕적인 말과 함께 버림받은 여동생은 충격과 아픔에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오빠는 분개했지만 그 역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내막을 알게 된 아버지가 잠시 역정을 냈을 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남편의 바람을
그리스도인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다. 우리는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갈 때부터 부흥을 위해 늘 기도해 왔다.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임재에 강하게 붙들려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길 원하고,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하나님의 강한 능력의 역사로 회개와 치유가 일어나는 모습을 기대하며,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국가가 거룩하고
허영진 목사교회는 지상나라와 하늘나라의 사귐의 장이요 시간과 영원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 서있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장벽을 초월하는 기관입니다. 인종, 계급, 성, 신분 등 모든 차별을 뛰어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사람과 사람 사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모든 장벽을 제거하셨기 때문입니다.“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
“아직도요? 저런!” 주일 예배 설교부탁을 받으며 대화하던 중에, 주차장에서 예배하고 있다는 설명에 안타까운 마음과 대단하다는 마음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몇 개월 전 방문했을 때 받은 감동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미국 교회 건물을 빌려서 예배 드리고 있던 이 교회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 동안 건물 실내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대면예배를 드릴 수
요즘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전과는 달리 그분들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흐릿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전에는 삶에 대한 자신감과 성취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분명했던 분들이었는데 요즘 달라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큰 변화의 변곡점에 서 있기 때문인 듯하다. 코로나가 끝나면, 이전과 같아지면, 마스크를 벗게 되면, 사업이 재개되면 등, 임시적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1630년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중심지로 동방의 향료를 찾아 대양을 건너는 범선들이 출발하는 곳이었다. 암스텔담은 돈이 넘쳐나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던 중 ‘튤립 뿌리 광란’ 사태가 일어났다. 튤립에는 160여 종이 있으며, 주로 지중해 연안국가에서 잘 자랐다. 콘스탄틴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튤립이 처음 네덜란드에 들어오자 이 남극풍의 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귀한 꽃이자 부(富)의 상징이 되면서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튤립으로 정원을 가꾸며 부(富)를 과시
한인사회에서 교회 이야기를 빼면 화제가 궁해집니다. 셋이 모여 10분 이상 이야기하면 어김없이 교회가 화제에 오르고, 목사, 장로, 집사 이야기가 나오고야 맙니다. 교회가 한인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인구 500명에 교회가 하나 꼴이라니 교회생활의 비중을 짐작할 만도 합니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막강해졌다고 볼 수도 있습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왔고, 교회와 신앙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목격된다. 얼마 전 시카고 시 정부는 코로나로 인한 규제들을 전면 해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교회는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맞이해야 할지, 우리가 다시 시작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성경에는 새롭게 출발한, 아니 다시 시작한 이야기들이 많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미국 정부 문장에는 중앙에 국조(國鳥)인 흰머리수리를 중심으로 둘레에 ‘다수에서 하나로(E pluribus unum)’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이는 미국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로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 pluribus unum: One of Many는 ‘다수로부터의 하나’ 혹은 ‘다수에서 하나로’ 라는 의미로 미국이 13개주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하나의 국가인 미국이 될 것임을 뜻한다.) 다양성과 화합을 기조로 더 나은 국가를 이루려는 의지의 발로였다. 이후에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을 표현하는 말
하나, 집 근처의 커뮤니티 파크에서 아침마다 산책을 한다. 나처럼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 달리기나 조기 축구 등 운동을 하는 사람, 잔디를 깎는 사람 등 이른 시간이지만 늘 사람들이 있다. 파크에 나가는 시간대가 비슷해 거의 매일 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 백팩을 멘 중년의 백인 남자인데 간편한 옷차림에 멋진 저먼 셰퍼드와 함께 나타난다. 그런데
1840년대 뉴욕의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는 영국계 갱단과 아일랜드계 갱단의 패권 다툼이 치열했던 곳이다. 영국계 이민자 우두머리 빌(Bill)은 잔인해서 ‘도살자’라고 불렸다. 그런 그는 먼저 신대륙에 와서 터를 닦았으며 독립전쟁 희생자의 후손인 만큼 이 땅의 원주인인 동시에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뒤에 이주해 온 아일랜드계를 핍
미국 정부 문장에는 중앙에 국조(國鳥)인 흰머리수리를 중심으로 둘레에 ‘다수에서 하나로(E pluribus unum)’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이는 미국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로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 pluribus unum: One of Many는 ‘다수로부터의 하나’ 혹은 ‘다수에서 하나로’ 라는 의미로 미국이 13개주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꾸어 말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선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의 눈을 뜨게 하며, 감사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게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죄를 용납지 아니하는 공의의 하
크게, 그리고 많이 변해 버린 요즘 같은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다윗에게 던져 보았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불확실한 환경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 무엇을 구했을까?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가장 되고 싶은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시편 27편은 내가 자주 묵상하는 다윗의 시이다. 다윗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영원히 살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무적의 복싱 챔피언이라던 마이크 타이슨도 얻어맞고 패할 때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초인적이라 할 만큼 큰 일들을 해낸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뽑아버릴 수 없는 “육
그런데 애초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인디언)을 보호 구역으로 몰아내고 지배하고 있는 다수의 백인도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계 이민자들의 자손이다. 다만 그들의 조상들이 다른 이민자들보다 먼저 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득권이나 우월감을 내세워 정세와 필요에 따라 소수 민족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경해 왔다. 일찍이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 대륙 동부에 들어온 앵글로색슨족은 원주민(인디언)들을 서쪽으로 밀어내면서 영역을 확장해 갔다. 루이지애나 지역대(地域帶)를 사들임으로써 땅을 곱절로 늘리더니 드디어 루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