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도 있지만 위기를 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배가 침몰하려고 할 때에는 빨리 거기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지진으로 인해 땅이 꺼지려 한다면 속히 탈출해야 합니다. 위험의 적신호가 들어온다면 모든 일을 멈추고 안전지대로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막상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이런 저런 이유로 때
가끔가다 기분이 좋아서 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평소에는 하지 못할 선행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액이 생길 기회를 양심에 따라 포기한다든지 아니면 생활비를 아껴서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경우입니다. 불의한 일을 하는 사람을 물리치고 약자를 도와 주는 것도 같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런 일을 하고 나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스스로가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자신
교회 수련회에서 하는 의식 가운데 가끔 촛불의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초는 분위기를 차분하게 하고 어둠을 밝힌다는 의미 때문에 헌신을 결단하는 순간에 잘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청년부를 섬길 때의 일이었습니다. 수련회 중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주제는 결단과 헌신이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은혜로운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진행팀은 초를 준비하고
은퇴를 하고 나면 몇 년 정도 선교지에 가서 선교사님들을 도우며 살다가 오는 것이 꿈이라고 말씀하시는 성도님이 계십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칭찬의 말을 합니다. “너무 멋진 생각이세요. 존경스럽습니다.”사람들은 그분의 믿음을 높이 평가합니다. 아마 그가 자신의 비전을 반복하여 선포하고 기도하며 준비한다면, 언젠가
분명한 목적과 인생의 비전을 품고 태평양을 건너온 사람들도 있지만, 더 이상 고국 땅에 머물 수 없어서 도망자처럼 비행기를 탄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큰 사건이요 스트레스입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도 힘든 일이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을 시도했다면 그곳이 지옥처럼 여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빨리 한 해가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성도를 보았습니다. 한 해 동안 너무 힘들었기에 해가 바뀌면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는 뜻으로 그리 말한 듯합니다. 정말 새로운 기운,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도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니 정치와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변
깨끗이 잊어 버려야 할 것과 평생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과거가 나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를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기억도 희미해지고 상처의 아픔도 약해집니다. 잊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도
아파트에 사는 한 성도의 가정을 심방했습니다. 미국에 온 지 이제 11개월째 되는 젊은 부부는 낯설음과 외로움의 장애물을 지혜롭게 극복하며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다과와 함께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격려하고 축복하는 기도로 심방을 마쳤습니다. 심방의 보람은 말씀을 들은 성도의 표정에서 깨달음과 결단의 표정을 볼 때
헌신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헌신의 동기는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동기가 결국 결과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동기로 인한 헌신은 그 과정에서 헌신의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헌신의 즐거움도 잃게 하고, 헌신의 열매도 무효화시키는 경우가 많지요. 공명심이나 영적 영웅주의에 젖어 헌신을 결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질투가 헌신의 원동력인 사람도 있습니다. 야망도
가을 심방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 교회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가정이나 사업의 현장에서 보는 성도들의 모습에는 치열한 삶의 흔적들이 묻어 있습니다.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힘들다”입니다. 여러 해 지속되는 경기 불황의 여파 속에 가장 피해를 입고 있는 계층은 바로 소규모 비즈니스를 하는 이민자들인 것 같습니다. 특히 1세대들의 사업분야는 세탁소나 소규모
한국의 일반 가정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설이 바로 벽난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사는 포틀랜드의 일반주택에는 대부분 벽난로가 있습니다. 겨울철엔 온도가 내려가고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되기에 집안을 따뜻하게 하고 습도를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듯합니다. 이곳에 이사와서 처음으로 우기를 맞아 재미삼아서라도 벽난로에 불을 피워 보자고 마음먹
사람은 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망각하고 싶어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가장 잘 잊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 처음엔 어색해하고 저항하기까지 합니다. 이질적인 환경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는 본능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협과 적응의 단계에 들어가면 점점 환경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중 인간의 마음만큼 변화무쌍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이성에 눈을 뜬 한 청년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온 여인과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세상이 달라 보이고, 순간순간이 설레임과 의미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소중한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주었습니다. 힘든 것을 마다하지
내가 사는 포틀랜드에선 이제 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날씨가 정말 좋았지요. 하늘과 바람과 온도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거의 매일 비를 보며 지내야 합니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날씨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습니다. 나중에야 지겨울 정도로 내리는 비라고 하겠지만 몇 일 전 내린 비는 그
현대 리더십의 위기는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신뢰의 상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뢰의 상실은 기대의 불만족으로부터 옵니다. 어쩌다 한 번 저지른 실수는 대개의 경우 이해되거나 용서를 받습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떤 실수는 단 한 번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기대치가 높을 때입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고 분노도 크기 때문입니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되어 심리적, 경제적 손실을 입은 성도의 가정을 심방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말씀과 말로 그를 위로하고 마음을 격려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문득 한국의 모 방송국 프로그램이 생각났습니다. 인기있는 개그프로그램중에 “친한 친구”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불행한 일을 당한 친구에게 두 명의 다른 친구가 찾아와 위로하는 과정중에 일
뜻하지 않은 사건은 인생을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틀게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도미니카의 한 선교사님은 그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한국의 대기업 회장님이셨습니다. 선친의 뒤를 이어 29살의 나이에 회장의 자리에 취임한 그는 공격적인 경영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세계 제일이 되겠다는 집념과 열정은 그에게 적절한 보상과
이성철 김선경. 올 여름 도미니카 아웃리치를 가서 알게 된 부부 선교사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가기 몇일 전 남편 선교사는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 현지인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이제 막 마흔 넘은 아내 선교사는 두살박이 막내를 안고 업으며 삶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방 한구석에 모셔놓은 남편의 사진과 유골 그리고 유품은 소식
분주한 삶을 살다보면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문제, 자기 상황, 자기 환경에 자기도 모르게 갇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세상의 존재와 상황에 대하여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고와 해석의 내용을 바
1983년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 기억할 만한 해입니다.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축구팀이 멕시코에서 세계 4강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수업을 중지하고 교실의 스피커를 통해 중계를 들으며 응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업적을 멕시코 4강 신화라고 했습니다. 표현 때문이었을까요? 그 성적은 말 그대로 신화 속의 일이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