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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성인이 된 여인은 어느 날부터인가 낯선 남자들의 시선과 감정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오랜 고민끝에 그 중 한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기로 하지요. 끝내는 그의 몸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몸 안에 다른 어떤 것이 들어온다는 것은 거북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몸에 대해 이질감보다 친밀함을 느낀다면 그 전에 이미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남성은 여인의 몸 안에 씨를 남겨놓습니다. 그 씨는 여성의 받아들임을 통하여 신비로운 과정을 밟게 됩니다. 바로 창조입니다. 아무것도 없음에서 생명이라는 있음의 단계가 시작됩니다. 남성은 들어왔다 나간 방문자이지만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유기체는 한참이나 둥지를 틀고 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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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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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사람들은 나를 압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나는 모르며 삽니다. 나는 나를 잘 압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나와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알거나 모르는 부분이 서로 다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갈등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사람들이 여전히 만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르게 아는 부분에 대해 서로 알려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인 앎에서 온전한 앎으로의 변화를 위해서입니다.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이 결과에 대해 주목할 때 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충동을 더 강하게 느낍니다. 현재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자꾸 말하려는 것이 때로는 시간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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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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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배우들은 작가가 쓴 대본에 감정과 혼을 불어넣어 작품을 살아있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작품은 해석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지요. 지휘자의 해석능력, 배우의 표현능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해석에는 원저자가 기록해 놓은 의도나 표현만큼이나 해석당사자의 경험도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에 다른 이들의 감정과 해석 당시의 분위기도 작용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대사의 앞에 지문이라는 것을 적어넣습니다. 어떤 작가는 직접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하기도 합니다. 임의적인 해석을 막고 감정과 동작을 표현하기 위해서이지요. 만약 그런 지문이 없다면 그 몫은 배우의 것이 될 것입니다. 배우가 어떻게 해석하여 표현하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공감도는 많이 달라지겠지요?성경은 예수의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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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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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우리는 그 날을 소망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최종적인 승리입니다. 그 날은 바로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될 것입니다.그 날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다시 빼앗길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역전될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 날은 완전한 승리요, 최종적인 승리요, 영원한 승리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느 순간보다 그 날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굴곡은 사라질 것입니다. 탄탄대로를 행진할 것입니다.그 날은 보상의 날이 될 것입니다. 보상은 이제까지의 손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신이 뿌렸으면서도 거두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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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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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나는 그 일을 떠안기가 싫습니다. 내 의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는 모든 일을 내가 생각하고 내가 알아보고 내가 선택하고 싶습니다. 자발성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금 일어난 이 일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정해져서 내게 주어진 일입니다. 나에게 한번도 양해를 구한 적도 없이, 미리 설명한 적도 없이 갑자기 일어났다는 것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아시나요?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할 마음이 아직 없습니다.나는 이 일을 하기가 싫습니다. 이 일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원할 만한 그 어떤 것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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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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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어떤 사람의 진심이 다른 이들에게 사실 그대로 전달되고 왜곡없이 해석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마음과 생각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수치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이 될 때는 말과 행동으로 표현될 때인데, 그 과정에서 오차없이 사실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듣고 보는 사람의 선입견과 가치관까지 섞여 해석될 때는 표현하는 사람이 가졌던 마음의 원형은 이상한 괴물로까지 변형되어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 다니기도 합니다.사람들이 억울하다고 말할 때는 진심의 왜곡 현상이 나타날 때입니다.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다면 몹시 답답해하겠지요.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진심을 전달할 최소한의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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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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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왜 하나님은 모세의 무덤조차 남기지 않게 하셨을까?”신명기를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상관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도자요 영적으로 선지자였던 그는 40년 동안 온갖 고된 일들을 겪으면서도 온유함과 불굴의 의지를 잃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바로 앞까지 인도하는 데 성공하지요.하지만 그의 몫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해방과 조직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소망했던 가나안땅을 한 발자욱도 밟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죽음은 30일 동안의 애도 기간을 가질 만큼 범공동체적 사건이었읍니다. 그렇지만 그의 무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의 흔적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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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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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신문은 연일 일본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에 대한 취재기사와 분석기사를 내놓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지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듯합니다. 선진국이라 불리우고 안전에 대해서 비교적 신뢰할 만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였기에 충격은 훨씬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생각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괜찮을까?’남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이번 사태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어떤 것에 대한 신뢰감을 한순간에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의 신념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안전함을 누리며 삽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더 이상 믿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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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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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사람들은 저마다 꿈꾸는 이상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곳은 슬픔과 불안이 없는 곳, 자유와 기쁨이 있는 곳이지요. 절대 평화와 참된 기쁨이 실현되는 곳입니다. 인류는 역사 이래로 이 곳을 소망하며 살아왔습니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이곳의 존재를 소개해 주었고 그곳에 이르는 법을 가르쳐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곳을 꿈꾸며 그곳에 이르기 위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합니다.당혹스러운 것은 꿈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그곳을 향해 나아갔는데 막상 그 자리에 이르고 보니 그곳이 꿈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만족은 순간이요 또 다시 찾아오는 불안과 갈증, 그래서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목표를 찾습니다. 목표를 찾지 못하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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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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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이청준 님의 소설 ‘축제’에는 부모의 죽음 앞에서 모든 자식은 다 죄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상여를 따라가는 상주들의 지팡이가 짧은 이유는 감히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지은 죄들이 많기 때문이라 하는군요. 내 존재의 근원이고 일방적으로 내 편을 들어 주는 유일한 분들인데도 그분들에 대한 우리의 행동은 마음 같지 않습니다. 남의 부모나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깍듯이 예를 갖추면서도 정작 내 부모에게는 왜 그리도 퉁명스러워지는지요.후회와 죄책감도 감상적인 차원에만 머물 때가 많습니다. 어버이 날이나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옛노래를 들을 때에는 자신을 탓하며 효도를 결심해 보지만, 그렇다고 찾아뵙는 횟수가 늘거나 보내드리는 용돈을 더 늘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습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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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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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인생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다가오는 마지막은 모든 이들에게 아쉽습니다. 또 두렵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사람들이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며 현재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익숙하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일수록 그런 현상이 심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그가 늙었다는 것, 그리고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을 때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거치며 회피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를 감사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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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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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교회 안에는 말도 많고 문제도 많다고들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며 한 마음으로 지내라고 하셨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크지 않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세 갈래 네 갈래로 나누어진 곳들이 적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인사하지만, 속으로는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있습니다. 사랑공동체를 깨트리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관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바이러스는 상대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마음 속에는 자신은 모든 것이 옳고 다른 모든 것은 잘못되었다는 자기 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우리 모두는 부분적으로 선하고 부분적으로 의로울 뿐입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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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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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인생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만나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이별을 경험합니다. 이별은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익숙한 것들이 자신에게서 떠날 때 사람들은 공허함과 불안을 겪습니다. 편안함의 감정이 익숙함에서 비롯된다면, 불안은 분리를 경험할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게다가 불안은 슬픔, 고통, 그리움의 감정들을 동반하며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그래서일까요? 우리는 가능하면 이별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이별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성장 과정은 분리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생명체가 첫번째로 분리를 경험하는 순간은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입니다. 그 후 출근하는 아빠의 손을 놓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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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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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제가 아는 한 사람은 웬만큼 아파서는 약을 먹지 않습니다. 감기 정도는 물론이려니와 뜻밖의 위통으로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그 흔한 진통제나 항생제 복용을 끝내 거절합니다. 어찌 보면 미련해 보이고 저러다 병을 키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을 인내하며 자신 안에 있는 자연치유력으로 이겨내려는 모습이 존경스럽기조차 합니다.고통의 순간과 고통스러운 감정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외로움, 슬픔, 불안, 지루함 등등... 그런 감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괴로운 감정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뭔가에 의존함으로써 괴로움을 잠시 잊을 수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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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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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연극이 끝나고 조명과 박수의 여운이 사라지면 무대에 홀로 남은 배우에게 공허함이 밀려온다고 합니다. 갑자기 생긴 시간과 빈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 한동안 안절부절한다는군요. 그래서 회식을 하고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어 애프터 모임을 갖는 것이 감정의 연착륙을 위해 필요하다고들 합니다.사람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았던 순간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성공의 흔적을 남긴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래서 뭔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자신을 자랑스럽게 내세웁니다. 자신의 전기가 기록되고 널리 읽혀지기를 소망하지요. 그런데 과연 그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일까요?어떤 사람의 됨됨이는 그가 뭔가에 몰두해 있을 때 보여지는 모습이 다는 아닙니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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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1.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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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시카고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들러서 사진을 찍고 그 배경에 대해 들어 보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미시간 애비뉴 한복판에 있는 워터 타워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1871년 10월 8일 시카고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불은 오랫동안의 건조한 날씨와 맞물려 이틀 동안 도시 전체를 태웠다고 하는군요. 3백여 명의 사상자와 10만여 명의 이재민, 현재 돈으로 수백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냈다고 하니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불바다에 이어 잿더미로 변한 사건입니다.그런데 그 대화재 속에서도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이 바로 워터 타워라고 합니다. 소방용 물을 담고 있는 건물이니까 타지 않았냐구요? 아닙니다. 그 건물이 타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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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1.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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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사랑하면 행복을 느낍니다. 사랑받으면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밝아집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말이 많아집니다. 평소 무뚝뚝하던 사람도 사랑에 빠져들면 쉴새 없이 이야기하려 합니다. 하루 종일 이야기하고 나서도 집으로 돌아가 전화로 두세 시간 또 통화를 합니다.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인생의 깊은 고민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합니다. 묻지 않아도 말하려 하고, 듣고 또 들어도 지루해 하지 않습니다. 무게감은 온 데 간 데 없고 앳된 목소리로 떼를 부리기도 합니다.사랑하면 함께 하려고 합니다. 상대방이 자신만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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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1.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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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내 잘하다가도 마지막에 관리를 소홀히 하여 이제껏 쌓아놓았던 명성과 업적을 하루 아침에 날려 버리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참 많습니다. 뒷심이 부족하면 끝을 망칠 수 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젖어들면 그 틈을 이용하여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성급하게 샴페인을 터뜨리는 조급함을 삼가야 합니다. 반대로 인상적이고 화려한 마무리를 위해 뭔가를 하려는 욕심도 버려야 합니다.사고야 늘 일어날 수 있지만 마지막에 실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회복의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운동경기에서 초반에 대량 실점을 했다거나 젊은 나이에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은 그렇게 낙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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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0.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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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먹고 살 일이 막막하고 도와주려는 이보다 앗아가려는 이들이 주변에 더 많을 때 연약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디로 피하거나 전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릴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후의 피난처는 죽음입니다.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지만, 현재가 죽기보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거나 두려운 이들은 대신 기다림을 선택합니다.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린다면 그 누군가는 현재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이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일 것입니다. 제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겠지요. 그는 모든 소망의 종합이며 완벽이며 이상입니다. 그런 분은 생각 너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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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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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안 되면 대부분은 회신을 기다립니다. 내 번호가 상대방의 전화기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답이 없는 경우엔 상대방의 예의를 의심합니다. 날 뭘로 보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발전한다면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아쉽다면 다시 연락을 하여 음성녹음을 하거나 방법을 바꾸어 문자를 보내기도 합니다.문자에도 답이 없어 메시지를 녹음한 적이 있습니다. 메시지에도 답이 없어 마음이 더 불편해졌지만 감정을 순화시키고 이메일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드디어 답장이 왔습니다. 얼마 전 전화기를 바꾸어 그런 일이 생겼다고. 미처 알려 드리지 못해 미안했다는 인사말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전화번호 바뀌었다고 내게 꼭 알려 주어야 할 정도의 관계도 아니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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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0.12.10 00:00